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책&생각] 꺼진 책도 다시 보자!

등록 2023-06-16 05:01수정 2023-06-16 10:37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김경일 지음 l 바다출판사(1쇄 1999년 5월1일, 2판 2023년 6월5일)

지금으로부터 무려 24년 전, 책 한 권이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다. 조선왕조 5백년을 지배하고, 결국 한 나라를 망하게 했던 유교주의를 거침없이 공격한 책이었다. 신분 차별주의, 가부장 의식, 남성 우월의식, 위선과 허세 등,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유교주의 잔재가 뿌리 깊이 박혀 있다고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마흔을 갓 넘은 젊은 학자 김경일의 주장은 파격적이었다. ‘공자 바이러스’ ‘유교 망령’ 등의 단어를 써가며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유교주의 문화를 조목조목 신랄하게 비판했다. 대한민국 평범한 중년 세대의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책, 바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다.

도발적인 내용만큼이나 인기도 대단했다.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최상위권 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한동안 ‘OOO 죽어야 OOO 산다’라는 제목이 유행하기도 했다. 화제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저자와 출판사는 톡톡히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유교를 숭배하는 유림에게 항의와 협박을 받는가 하면, 성균관으로부터 “공자와 유교에 모멸감을 줬다”며 명예훼손으로 고발까지 당했다.

1999년에 화제의 베스트셀러였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가 얼마 전 재출간되면서 다시 베스트셀러 목록에 등장했다. ‘세이노 효과’ 때문이다. <세이노의 가르침>이 주요 서점이 선정한 ‘2023년 상반기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면서, 세이노가 추천한 책들이 다시 빛을 보고 있다. 세이노는 “이 책 정말 좋은 책이다. 반드시 읽어라. 위선자들을 골라내는 법을 어느 정도는 배울 수 있을 것이다”라면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추천했다. 24년 만에 재출간된 책의 띠지에는 ‘<세이노의 가르침> 추천 도서’ ‘초판 가격 그대로 재발간’ 등의 홍보 문구가 적혀 있다. 세이노의 추천 덕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외에도 절판되었던 여러 구간이 복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동안 잊혔던 책들이 재출간되고 다시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게 단지 ‘세이노 효과’ 때문일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지금 읽어도 여전한 울림이 있다. 그 사이 강산은 두 번 이상 변했지만, 우리의 의식은 그다지 많이 변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유교주의 그림자가 뼛속 깊이 남아 있다. 허례허식에서 비롯한 불합리와 부조리, 악습과 폐단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재출간은 변화를 향한 우리 사회의 열망을 재확인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디지털과 인공지능 기술, 그리고 챗봇의 발전으로 지식의 반감기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는 요즘, 10년 또는 20년 전에 출간되었던 책이 다시 세상에 출현하는 일은 분명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유명 유튜버에 의해 소개되었거나 누군가의 ‘인생 책’으로 언급되면서 절판되었던 책들이 다시 재출간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 출판편집자들 사이에서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라는 말이 유행이다. 흙 속에서 진주를 찾는 심정으로 중고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절판된 책들 가운데 복간할만한 책들을 찾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아뿔싸, 이런 상황에서 ‘옛것을 익혀 새것을 배운다(온고지신)’라는 공자의 가르침이 떠오르는 것은 웬 아이러니인가.

홍순철/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감탄만 나오는 1000년 단풍길…2만그루 ‘꽃단풍’ 피우는 이곳 1.

감탄만 나오는 1000년 단풍길…2만그루 ‘꽃단풍’ 피우는 이곳

교보문고에 ‘한강 책’ 반품하는 동네서점 “주문 안 받을 땐 언제고…” 2.

교보문고에 ‘한강 책’ 반품하는 동네서점 “주문 안 받을 땐 언제고…”

김수미 추모하며…‘일용 엄니’ 다시 방송에서 만납니다 3.

김수미 추모하며…‘일용 엄니’ 다시 방송에서 만납니다

연예인 마음 건강 챙긴다…하이브, 정신과 의사 상주 사내 의원 열어 4.

연예인 마음 건강 챙긴다…하이브, 정신과 의사 상주 사내 의원 열어

[영상] 배우 김수미 “다들 건강하시고 또 만나요” 마지막 인사 될 줄은… 5.

[영상] 배우 김수미 “다들 건강하시고 또 만나요” 마지막 인사 될 줄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