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런 곳에서 책방을 하시면 운영하시기 괜찮나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책방에서 듣는 말이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전원주택 마을 막다른 길 끝에 책방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대전 도심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아주 평범하고 조용한 마을, 심지어 안내 간판도 제대로 달지 않은 채 주택가 끝에 꼭꼭 숨어있는 세모 지붕 주택 ‘버찌책방’은 올해 12월이면 만 4년3개월을 맞는다.
4년 넘는 시간 동안 작은 책방이 걸어온 길이 절대 순탄했을 리 없다. 일단 독서 인구는 점점 줄고, 코로나 이후 경기는 장기 침체 되었다고들 하고, 돈 주고 사지 않아도 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점점 열악해지는 서점업계 환경 속에 작은 책방이 쌓아온 시간, 책 한 권, 한 권마다 남겨진 다정한 기억들은 땅 속에서 고구마가 줄줄이 캐어서 나오듯 쏟아진다. 책방의 오늘은 결코 책방지기 혼자서 채우지 않았다.
‘더불어 읽고 더불어 살아갑니다.’
책방 슬로건처럼 버찌책방은 함께 읽는 경험이 특화된 공간이자 사람이라고 소개해야 맞을 것 같다. 책방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매일의 판매량에 기대고 있을 순 없었다. 책 판매에서 시작한 작은 책방의 활동 영역은 독서모임, 칼럼 기고, 공간 맞춤 큐레이션 납품과 맞춤 주제 책모임 진행, 출판사와 전시 협업, 저자와의 만남, 독립출판까지. 이쯤이면 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해본 셈이랄까.
책방과 집을 합쳐 작은 주택을 짓기로 결정한 뒤, 1년6개월의 공사 기간 동안 두 팔 걷어붙이고 책방 밖으로 나섰다. 면허를 따고 경차를 장만해서 트렁크에 나무 책장을 짠 뒤, 이동식 책방인 ‘찾아가는 버찌책방’을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책으로 맺어온 관계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와 책으로 마음을 나누고 싶은 간절함이 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일본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는 “어떤 사람을 만날지는 그가 가진 ‘생명의 그릇’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책방이라는 안전지대 밖에서 쌓은 우연한 만남의 시간들을 통해 ‘시즌 2’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다정함’이 좁았던 나의 ‘생명의 그릇’을 보다 넓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건축 자재비의 수직 상승과 고금리라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많은 책벗들의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가족이 직접 지은 작은 집 1층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두 번째 시작하는 책방인 만큼 ‘책’보다 ‘책 경험’에 중점을 두고 그 경험을 세분화 했다.
다양한 형태로 경험하는 시간 속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책 이야기에 감응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기 때문이다. 책방 여기저기, 서가 앞에 서서, 읽고 있던 책을 곁에 있는 이에게 보여주기도 하면서, 커피를 호호 불며 마시며 안부 인사를 나누면서, 서로가 서로의 기억이 되었다. 각자 내어놓은 작은 다정함이 더해지고 더해져 제법 큰 다정함이 되고, 모두가 다정함을 안고 공간을 나서곤 했다.
버찌책방 ‘시즌 1’이었던 ‘찾아가는 버찌책방’ 모습.
노출 콘크리트와 나무 마감 소재에 어울리는 커피 맛을 고민해 책방 전용 블렌딩 원두로 내린 드립 커피를 판다. 공간에 머물며 책과 함께 양질의 커피 한 잔까지 즐기는 경험, 이른바 ‘책 한 잔 커피 한 권’을 제안한다.
또한 버찌책방을 이용하는 손님들이 책방에서 함께 읽는 경험을 편안히 생각하길 바라며, 모든 독서 행사는 ‘일상생활’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으로 통일했다. ‘일상생활’이라는 콘셉트 안에서 책방지기가 직접 운영하는 모임, 책방 친구들이 운영하는 모임, 작가와의 만남까지 다양한 책 행사를 매주 빠짐없이 소화해 내는 중이다. 그리고 비어있는 벽과 책장, 통유리를 활용해 출판사와 전시 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정신과 치료와 그림책 읽기를 5년 넘게 병행한 끝에 복용을 끝낸 배우자의 ‘그림책을 읽고 약을 끊었습니다’라는 독립출판물을 내기도 했다.
버찌책방에서 펴낸 독립출판물 ‘그림책을 읽고 약을 끊었습니다’.
작은 책방 안에서 이 모든 걸 어떻게, 왜 하냐면? 결국 답은 하나, 함께 읽고 나누는 경험을 위해서다. 산 속 깊숙이 자리 잡은 전원주택 1층의 작은 책방에 우연히 들르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버찌책방에 와야만 하는 이유는 책방지기가 만들면 된다.
여기까지 찾아오셨으니 책만 사서 가지 마시고, 다정함을 책갈피 삼아 책 속에 끼워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래오래 책벗들과 함께 읽으며 내 안의 다정함과 내 곁의 다정함을 잘 돌보며 살고 싶다.
대전/글·사진 조예은 버찌책방 책방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