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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권은정의인터뷰무제한] “춤, 대단한 거 아니거든요”

등록 2006-04-27 18:57수정 2006-04-28 14:55

2년 전 ‘운동권 출신 교수 파격 임용’ 화제
20대 탈춤운동 하며 발레와 화해
스스로 몸의 언어를 찾아가게 돼
억압적인 풍토에서는 예술 창조될 수 없죠
춤은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일단 몸을 써보세요
권은정의 인터뷰 무제한/조기숙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

그는 뉴발레리나다. 발레가 반드시 곱고 가냘픈 흔들림으로만 표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춤선생이기 때문이다. 조기숙 교수(47)를 찾아 이화여대 무용과로 가니 프로 무용수들과 함께 이틀 앞둔 공연을 위해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는 좀더 일찍 왔더라면 공연에 참가하는 무용과 학생들을 만났을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학생들은 오전에 연습을 마쳤단다. 참가학생이 모두 일곱이라는데 그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현재 그가 가르치는 전체 무용과 발레전공 학생 수에 비하면 그의 작품을 하겠다고 나선 학생들은 10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

“지극히 소수이지요. 그러나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춤 자체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 것이거든요. 정형화되고 고정된 표현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기 몸의 언어를 찾아가는 것을 보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아세요? 바로 예술가를 길러내는 일이예요!”

발레수업이 얼마나 전통적이고 고되고 엄한 것인지 겪어보지 않아 잘 안다고 할 순 없어도 짐작은 할 수 있다. 수백년을 내려오며 한 치 어김없는 발레 수업. 아마 그것은 ‘헌법’ 이상일 것이다. 그러니 ‘네 자신의 몸 언어를 표현하라’는 조기숙 선생의 수업시간은 학생들에게 작은 해방구일지 모른다. 그의 수업 안에서는 자신을 찾아가려는 시도를 쭈빗거리지 않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징표를 보여주는 <뉴발레 공연>이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지원금은 턱없이 적은데 비해 지출이 만만치 않아 악전고투 중이지만 멈출 생각은 없다.

“빚을 지더라도 해야지요. 작품을 같이하면 애들이 깨어난다는 것을 눈으로 목격해요. 아이들은 내가 10년 공부한 것을 두 달 안에 소화해내요. 그 희열이 얼마나 큰데요.”

그는 교수라는 일을 ‘시주하는 것’이라고 풀었다. 학생들이 잘 할 수 있게, 잘 커 나갈 수 있게 지원해주고 인도해주는 일이 바로 자신의 임무라는 것이다.


이제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영국 서레이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온 그에게 모교 무용과에서 교수로 임명했을 때 사람들은 적잖이 놀랐다. 혹은 이화여대가 ‘변화를 시도한다’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운동권 출신을 뽑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가르치는 일은 시주하는 것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바뀐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요. 시스템 밖에서 얼마든지 과격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들어와서는 조그만 거 하나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느껴요. 저는 무리하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 마음이 바뀌어야 바뀌는 것이니 시간이 걸릴 거예요. 급하게 마음먹지 않습니다.”

그는 변화를 위한 최초의 개혁을 자기 안에서 찾아 시도하고 있다. 바로 자신의 춤, 그것을 개혁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무용관이 변했다고 인정한다.

“저는 늘 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큰 그림을 가지고 있었지요. 지금은 춤이 세상에 대해 대단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정말 작은 것을 하더라도 자유롭고 편안하게, 다양한 여러 가지 중에 하나가 되면 좋겠어요.”

사실 변한 것은 그의 무용관 뿐만이 아니다. 이십대 말까지 그는 발레를 한다는 사실이 죄스럽고 미안하고 창피했다고 한다.

“발레를 한다는 게, 그것도 이대 무용과에서 전공한다는 게 그랬지요. 우리 때만 해도 대학 못 가는 사람들이 많았잖아요.”

처음부터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길래 발레를 한다는 사실에 그토록 마음이 편치 않았을까? 정말 몹시 궁금했다.

“무용과에 왔는데 예술적인 욕구가 도저히 충족이 안 되는 거예요. 무용과 분위기가 갑갑한 게 싫었어요.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데서 예술이 어떻게 나올까 싶었지요. 학내 서클활동하면서 예술과 사회에 대해서 고민 많이 했는데 그 덕분에 결국 춤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아니면 대학 그만 다녔을 거예요.”

집시법 위반으로 아주 ‘잠깐’ 감옥생활을 한 후 그는 본격적으로 문화운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탈춤운동도 했는데 대학시절 그는 탈춤을 ‘덜 투쟁적’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단다. 그때쯤 그는 발레와도 화해를 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남들은 문화적인 수단이 없어서 난린데 난 가지고 있다는 발견을 한거죠. 무용에 대한 애정은 늘 저 안에 살아 있었지만요.”

발레는 그에게 여러 가지로 중요한 의미이자 수단이었다. 아르바이트로 레슨을 하던 학생시절부터 결혼 뒤 생계를 위해서까지 발레를 한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 발레가 그를 정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먹여 살린 것이다.

키작은 얼큰이…난 무용계 희귀종

“공부도 게을리 할 수 없었고 늘 고민을 하다 보니 안무에 대한 나만의 것이 축적되었던 거죠.”

1980년대 만해도 그의 안무는 ‘유아적인 수준’이었노라고 한다.

“그땐 의무감이 컸지요. 이 시대를 표현해야 한다, 이 권위적인 체제에 춤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안무 자체에 대한 이론이나 축적된 실력이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뜻은 좋았으나 참 유치했다 싶지요.”

그는 흔히 발레리나의 몸이라고 보기에는 체구가 작은 편이다.

“모두 의아해 하는데요. 제가 어려서부터 워낙 키가 작았어요. 발레하면 키 커진다고 해서 시작했지요.”

그가 그냥 팔을 한번 올리는 동작에서 봐도 보통 사람과는 느낌이 다르다. 천상 무용가의 몸이다. 그러나 자신이 ‘바디 콤플렉스’에서 한참 헤맸노라고 한다.

“발레를 한다면 얼굴은 조막만 해야 하고 뭔가 쭉 뻗은 몸매에 팔다리는 길어야 하는데 전 안 그렇잖아요? 늘 이렇게 말해야 주위가 편해지는 걸 느꼈지요. 난, 무용계의 희귀종이에요, 하하하…”

1990년대 중반에 영국에서 시작한 안무 공부를 통해 그는 몸의 편견에서도 해방되었다.

“각자 자기 리듬대로 하는 거예요. 키가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팔이 짧으면 짧은 대로…. 드디어 제 몸이 편하게 느껴지더군요.”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도 공연을 하는 등 새로운 이론과 실전으로 그는 자신의 안무 수업을 단단히 다졌다. 그는 안무에 새로운 방법을 도입했다. 안무가가 동작을 짜서 무용수들에게 넘겨주면 외워서 연습을 하게 하던 방식과는 전연 다르게 했다.

‘무용수 양산’은 세계적 기현상

“무용수들에게 목표를 줘서 그들이 잘하는 내용을 스스로 뽑아낼 수 있게 인도해 주는 것이지요. 자신도 모르고 있던 가능성을 뽑아내서 잘할 수 있게, 조화를 시키는 그런 방식이지요. 그래서 제 작업에 참여했던 무용수들은 안무능력과 춤이 늘지요. 물론 컨셉이나 주제는 제가 잡지요. 무조건 찾아보라고 하면 안 되거든요. 제가 그 길을 인도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그의 안무실력이 사람들을 얼마나 감동시키고 있는지 최근 작품 <그녀가 온다>(2005년 세계여성대회 전야제 공연작)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는 우리나라 무용수 양산은 세계적인 기현상이라며 여러 면에서 각 대학 무용과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지금 같은 형태로는 경쟁력이 없어요. 억압적인 풍토에서는 예술이 창조될 수 없어요.”

그의 말을 바로 면전에서 듣고 있는 나를 포함해서,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 ‘춤맹’이 있는가. 춤을 보면서 뭘 느껴야 하는지 우리 대중은 알지 못한다. 춤의 저변을 어떻게 넓혀갈 수 있을까?

“춤, 대단한 건데 너들 몰라? 그랬지만 그거 아니거든요. 그냥 진솔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지요. 먼저 생활현장에서 쉽게 몸을 써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해요. 요가나 다른 몸동작, 댄스를 통해 일단 몸을 써보면 벌써 달라요.”

4년 전부터 시작한 <자아를 찾아가는 춤여행> 특강에서 춤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열흘만 지나면 직접 안무해서 공연을 할 정도가 된다면서 그는 체험을 강조한다.

권은정/전문 인터뷰어
권은정/전문 인터뷰어
“춤은 지극히, 지극히 육체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도 같이 들어가 있지요. 춤을 춘다는 것은 건강해지는 것이지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말이지요. 또 자기를 생각해보게 돌아보게 하고, 자기를 찾게 하기도 하고 버리게 하기도 하지요. 자기성찰에 아주 좋은 방법이지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자기에게 몰입하고 관조해볼 수 있게 만들지요.”

그는 이상한 선생님으로 불린다. 너무나 다정하고 격의 없어 ‘비억압적인’ 선생님을 학생들이 낯설어하는 것은 그러나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학생들은 너무 오랫동안 권위와 억압에 익숙해져 왔다. 우리 모두처럼. 조기숙 뉴발레리나의 춤을 따라 가면 우리도 자유와 창조를 향한 날개짓을 퍼덕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난 느낄 수 있었다.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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