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교수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등에서 발굴한 사진자료들도 〈한국전쟁〉에 함께 실었다. 개전 초기 한강에서 도하작전 중인 북한군.
사진 ‘돌베개’ 제공
남침설·북침설 ‘허구적 논쟁’ 배제하고 철저한 실증
1948~50년 집중…‘남 북침위협, 북 선제공격’ 결론
1948~50년 집중…‘남 북침위협, 북 선제공격’ 결론
정병준 교수 역작 ‘한국전쟁’…미·소·중·남북한 문건 종합분석
한국 전쟁의 ‘실체적 진실’을 긴박하게 파고든 역작이 나왔다. 현대사를 전공한 소장학자 정병준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교수가 〈한국전쟁〉(돌베개 펴냄)을 펴냈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선 한국전쟁을 해석하는 두 흐름인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를 동시에 넘어서려는 학문적 야심을 유감없이 구현했다. 그 경로는 철저한 문헌조사다. 이 저술의 밑바탕에 흐르는 이론적 지향은 남침설과 북침설의 어느 쪽에도 편향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가설이나 주장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아예 신경쓰지 않았다.
대신 미국, 옛 소련, 중국, 남한, 북한 등 참전 국가의 문서를 샅샅이 뒤졌다. 특히 90년대 이후 공개된 옛 소련 문서 외에도 정 교수 자신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등에서 찾아낸 미국의 노획 북한 문건들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이 저술은 국내 역사학계의 지평에 한국전쟁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음을 알리는 지표 구실도 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역사학자들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분야에 대한 중요한 학문적 진전은 다분히 정치학계의 몫이었다. 남과 북의 공식 전사(戰史)도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양쪽 정부가 주도한 것이었다. 80년대 이후 본격화된 한국 현대사 연구자들의 거대한 흐름이 이제 해방정국을 넘어 한국전쟁이라는 분수령에 다다른 셈이다. 이념을 앞세워 역사학계의 실증적 성과를 무화시키는 ‘허구적 논쟁’이 횡행하는 풍토에서 정 교수의 저술은 뜻있는 역사학자들의 분투를 상징한다.
이 과정을 통해 기존 연구에 새로운 토양을 제공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우선 미·소 점령정책의 구현체로 38선을 주목했다. 38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서로 이해할 수 없었던 초기의 혼란 양상을 실증적으로 파고들어, 이 긴장이 48~50년에 이르는 ‘38선 충돌’로 이어진 과정을 살피는 대목은 이 책의 압권이다. 남한이 먼저 북을 공격했다는 ‘해주 공격설’의 실체를 파헤친 것도 중요한 성과다. 남한이 해주를 공격하려는 작전구상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공격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정 교수의 결론이다. 역설적이게도 북침설의 근거가 된 해주 공격설은 개전 초기 한국군과 한국 언론이 있지도 않은 전과를 조작·과장해 선전한 데서 비롯됐다.
이 책은 참고문헌 목록까지 포함해 800여쪽에 이른다. 그러나 한 편의 장쾌한 영화를 보는 듯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1948년부터 1950년 개전 직전까지의 시간에 집중하는 이 책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메커니즘을 수많은 문헌과 기록을 통해 생생하게 재현한다. 1949년까지도 북진 통일전쟁을 구상한 이승만 정부를 미국은 한사코 막아섰고, ‘북침 위협’에 긴장한 북한은 오히려 이 와중에 전력을 증강해 소련의 승인과 지휘 아래 전쟁을 일으켰다.
정 교수는 이승만을 비롯한 우파 세력이 해방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해 단독정부를 설립한 과정을 실증분석한 〈우남 이승만 연구〉를 지난해 내놓았다. 이번 저술은 그 직후부터 한국전쟁 발발 직전까지의 시기를 연구한 것이다. 눈치빠른 이들은 앞으로 나올 저술을 짐작할 수 있다. 1950년 6월25일 이후, 한반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남침설과 북침설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민족사적 비극의 실체를 밝히는 또 한번의 역작이 기대된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1950년 9월 맥아더 장군이 마운트 매킨리호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고 있다.
1951년 4월 한국 육군 헌병이 대구 지역의 부역자들을 구덩이에 넣고 처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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