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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 19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학술대회

등록 2006-06-30 18:52수정 2006-06-30 18:57

최장집·손호철 교수 대통령제 개선·실천 강조
“좋은 정당에 뿌리둬야 민주적 리더십 나와”
김상봉·이병천 교수 “정당 이끌 자율시민 육성”
“대통령을 민주화하자”

어느새 6월 항쟁도 역사가 됐다. 19년 전의 일인데, 그 현재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요즘 대학생에게 6·10은 낯선 숫자뭉치다. 6월 항쟁 19돌을 기념하는 자리가 29일 서울 태평로 언론회관에서 열렸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자리였다. ‘6월 민주항쟁과 한국 민주주의 현주소’를 주제로 20여명의 학자들이 참가했다. 인문·사회과학계를 대표할 만한 인사들이었다. 이런 내용의 학술대회치곤 이례적으로 500여명 정도의 청중이 모여들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오늘 토론회의 성공이 한국 민주주의의 실패를 상징한다”고 우스개 섞어 말했다. 실패한 민주주의를 되살리고자 뜨겁게 토론했던 쟁점들을 정리한다.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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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토론에서 대표 발표를 맡은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전체 논의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최 교수는 “대통령을 민주화하자”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대통령은 인격체가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다. “민주주의에 대해 여러 고민이 있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제도인 대통령에 대해선 별다른 논의가 없었다”고 말했다.

최 교수의 주장은 한마디로 “민중권력의 대변자인 대통령을 민주주의 제도 속의 대통령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87년 이후) 한국 민주화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이라고 하면 민중권력을 한 몸에 담는 것으로 이해했다.”

87년의 직선제 개헌이 ‘호민관으로서의 대통령’이라는 신화를 낳았다는 이야기다. 민주화는 적합한 호민관을 찾는 노력으로 귀결됐다. 최 교수는 이 때문에 “민주파들은 어떤 사회정책을 추구하고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하는 전망과 실천의 문제의식은 약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단순히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과제가 대통령 개인의 의지와 능력에 대한 기대 또는 의존으로 대체되는 상황에 주목하자는 게 최 교수의 문제의식이다. 한 시대의 민주주의를 ‘인격적으로’ 표상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각각 어떤 한계에 봉착했는지 돌아보면 상황은 더욱 분명해진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도 이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의 민주화란, 대통령이 정당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손 교수는 “국익을 위한다며 대통령의 탈당이나 당정분리를 요구하는 이들이 있는데, 오히려 탈당 등은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 기반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라며 “정당정치로부터 분리된 대통령은 민주화된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흥미롭게도 두 정치학자 모두 대통령제의 긍정성을 부정하진 않았다. 현행 대통령 제도를 다른 어떤 것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그 제도에 내장된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제도적 실천’을 강조했다. 최 교수는 “대통령을 제도적으로 안정화하는게 중요하다”며 “사회의 중요한 이슈와 갈등을 잘 드러내는 좋은 정당 위에 대통령이 서야 민주적 리더십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최 교수의 ‘좋은 정당론’을 넘어서려는 논의도 많이 나왔다. 최 교수에 대한 학문적 비판인 동시에, 진보개혁세력의 자성을 촉구하는 지적이기도 했다.

우선 ‘시민’에 주목하자는 제안이 두드러졌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올바른 민주주의를 위해 올바른 정당정치를 확립해야 한다는 건, 배고프면 밥먹어야 된다는 수준의 동어반복”이라며 “문제는 그 정당을 누가 만드느냐에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당을 움직이는 것은 공공적으로 사유하는 시민인데, 현재의 한국 교육은 철저하게 이를 가로막고 있다”며 “플라톤·루소 등 과거 정치사상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정치학자들도 자율적 시민을 기르는 교육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도 “정당정치 중심적 민주주의는 너무 협소하다”며 “토의 민주주의, 풀뿌리 참여 민주주의 등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고 익히는 시민적 주체를 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손호철 교수는 “진보정당마저도 제도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감안할 때, 과연 정당이 민주주의 진전을 위한 최상의 조직인지 근본적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국내의 민주주의 문제에만 주목한 나머지 세계화의 효과를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세계화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지나치게 민주화의 문제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며 “민주파들이 민주주의 심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동안, 정작 일반국민들은 세계화로부터 비롯된 삶의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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