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에서 경매업체로 스카우트 2년만에 ‘와인’에 빠져 독립
국내 유일 포도주 경매사로 “좋은 와인과 특별한 만남 주선”
국내 유일 포도주 경매사로 “좋은 와인과 특별한 만남 주선”
인터뷰/<올 댓 와인> 쓴 조정용씨
‘경매’하면 떠오르는 이름, 영국의 소더비. 1997년 봄, 이 소더비에서 경매가 열렸다. 이날 경매는 좀 특이했다. 경매에 나온 물품은 단 한 종류, 그러나 갯수는 1만8000개였다. 그리고 모두 한 사람이 수집한 것이었다. 더욱 다른 경매와 달랐던 것은 구경꾼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는 점이다. 이날 하루 경매의 낙찰 금액은? 자그마치 72억원! 수집가는 <오페라의 유령>과 <캐츠>를 만든 세계 최고의 뮤지컬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였고, 그가 50평생 모은 수집품은 바로 와인, 포도주였다.
포도주도 경매를 한다고? 당연하다. 외국에선. 몇십년 이상된 포도주가 놀랄만한 가격에 거래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서양에서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포도주 경매가 보여주듯 한 개인이 일생 동안 모은 포도주를 한꺼번에 경매하는 ‘특별 이벤트’가 종종 벌어진다. 웨버의 경매 낙찰액 72억원은 이런 개인 포도주 경매 역대 3위 기록이다. 1위는 노르웨이의 와인 수집가 크리스텐 스베아스의 와인 경매로, 하루 낙찰금액이 무려 140억원에 이르렀다.
그런데 국내에서도 이 포도주 경매가 열린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포도주 경매를 벌이는 이는 경매업체 아트옥션의 조정용 대표다. 국내에서 ‘와인경매사’란 직업을 가진 이도 아직까지는 조씨 혼자다. 조씨가 최근 펴낸 포도주 입문을 위한 교양참고서 <올 댓 와인>(해냄 펴냄·1만9800원)은 일반인들이 포도주에 대해 알아두면 좋을 지식을 꼼꼼히 갈무리한 교과서같은 책이다. 하지만 지은이가 국내 최초, 유일의 와인경매사인 조씨인데 당연히 포도주 경매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는 법.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국내에 소개된 포도주책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와인 경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와인을 직업으로까지 삼게 될 줄은 조씨 자신도 몰랐다고 한다. 그저 문화와 미술을 사랑하는 은행원이었던 조씨는 지난 2001년 초, 같은 은행 선배 김순응 당시 서울옥션 대표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그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미술품 경매업체인 그곳에서 조씨는 미술품 외의 다른 경매 아이템을 개발하는 업무를 맡았고, 외국 사례를 참고해 고른 품목이 바로 포도주였다. 그렇게 2년 넘게 포도주 경매를 진행하면서 조씨는 이 분야에 인생을 걸어보기로 결심했고, 2003년 독립해 아트옥션을 차렸다.
아트옥션은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포도주 경매를 철마다 열고 있다. 아직 초기이고 전용 경매공간도 따로 없어 주로 유명식당에서 여는데, 경매 본연의 ‘투자’ 측면보다는 이벤트로서의 성격이 강한 편.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포도주 애호가들은 오히려 더 재미있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참가비는 7만~8만원에 이르지만 보통 1잔에 1만원 이상인 포도주를 3가지 맛볼 수 있고, 무엇보다도 포도주 수입회사들과 소비자를 곧바로 이어주기 때문에 포도주를 시중가보다 싸게 살 수 있는게 와인 경매 최고의 매력입니다.” 실제 경매 참가자 대부분이 특별한 재미나 취미의 연장선에서 부담없이 참가하는 30대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라고 조씨는 설명했다. 물론 2만~3만원대의 무난한 포도주들은 여러병을 한꺼번에 경매에 부치기 때문에 주로 포도주 동호회 차원이나 애호가 여러명이 같이 사서 나누기도 한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 좋은 칠레 와인 가운데 하나인 몬테스 알파만해도 백화점에서는 3만8000원이지만 경매에서는 2만8000~3만원 정도에 살 수 있습니다.”
조씨가 책을 쓴 것은 사실 “와인이 친절한 마실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알면 알수록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마시는 이들에게 더 많이 깨닫기를 요구하는 이 까다로운 술이 대신 그만큼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조씨는 친절한 설명을 통해 전해준다. 그리고 와인과 더욱 특별하게 만나보고 싶다면 한번 와인 경매를 구경해보라고 은근하게 유혹한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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