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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옥탑방 소년의 슬픈 현실 그리고 희망

등록 2006-07-20 23:20

제11회 한겨레문학상 받은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조영아씨 장편소설 나와
제11회 한겨레문학상 당선작인 조영아(40)씨의 장편소설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한겨레출판)가 책으로 나왔다.

소설은 청운연립 옥탑방에 사는 주인공인 초등학교 6학년 소년 ‘상진’이 첫눈 내린 날 아침 지붕에서 지붕으로 건너뛰어 다니는 흰색 여우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에 앞서 소년은 생애 최초의 몽정을 경험하는데, 그 날은 겨울방학 첫날이었다. 그래서 소년은 자신의 ‘낙서장’인 옥상 물탱크에 쓴다: “오늘은 뭐든지 처음인 날이다. 처음으로 몽정을 했다. 그리고 여우를 처음 봤다. 오늘은 겨울방학 첫날이다.”

소설의 시작은 순결하고 환상적이지만, 소년이 처한 현실은 팍팍하고 암울하기만 하다. 발파 해체 공사장에서 일을 했던 아버지는 사고로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집 안에 틀어박혀 텔레비전을 벗할 따름이다. 텔레비전 시청 외에 아버지가 하는 일이라고는 ‘64빌딩’ 도면을 들여다보며 발파 해체 방법을 연구하는 것뿐. 어머니가 아버지를 대신해 트럭 행상을 다니다가, 겨울이 되자 포장마차로 업종을 바꾸었다. 소년이 ‘모호면’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형은 덩치만 클 뿐 지능은 일곱 살 정도에 머무는 저능아. 짝사랑하는 연립주택 아래층의 동갑내기 소연이는 냉담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다. “아무런 일도 기대할 수 없는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이 나를 슬프게 했다”고 소년이 말하는 것은.

“흰색 여우를 처음 봤다…
다른 별에서 온걸까…
여우 따라가면 새 세상이…”

소설의 제목으로 쓰인 여우는 물론 현실의 존재는 아니다. 주인공 소년은 자신의 환상 속에서 여우를 분명 목격했지만 그것을 아무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그를 답답하게 한다. 그가 주변 어른들 중에서 유일하게 믿고 따르는 늙은 색소폰 주자 ‘전인슈타인’(전인권과 아인슈타인을 닮았다고 해서 붙인 별명이다)만이 자기도 여우를 보았노라고 맞장구친다. 소년은 난데없는 여우를 보면서 “멀리 다른 별에서 우주에 떠도는 수많은 혹성을 징검다리 삼아 이곳에 온 게 아닐까” 짐작하는데, 어린왕자의 소울 메이트였던 여우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여우를 따라가면 뭔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과 전혀 다른 곳”이라고 소년은 또 생각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여우는 소년의 현실 초월 욕망을 구현하는 상징적 존재라 할 수 있다.

“까닭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방구석에서 64빌딩 도면을 들여다보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주꾸미를 입 안 한가득 밀어 넣던 모호면이 머릿속으로 스쳐갔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잠이 들던 엄마, 그 품에서 풍기던 비릿한 꽁치 구이 냄새가 자꾸 생각났다. 그리고 말 한 번 붙여보지 못한 소연이의 하얀 가르마가 어른거렸다.”(156쪽)

소년은 ‘까닭 없는’라고 표현했지만 그의 슬픔에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소년을 슬프게 하는 것들은 그의 가족이 무허가 옥탑방을 비워 줘야 하는 사태로 집약된다. 그럼에도 소설의 결말이 아주 어둡지는 않다. 옥탑방을 비워 줄 것을 요구하며 포장마차를 찾아와 행패를 부리던 깡패에 맞서 형은 용감하게 칼을 휘두른다. 아버지는 가족의 이삿짐을 실은 트럭의 운전대를 손수 잡는다. 트럭이 떠나고 나자 청운연립이 발파해체 공법 형태로 무너져 내린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들여다보던 도면은 청운연립 설계도였다. 떠나기 전 소년은 마지막으로 물탱크에 그림을 그린다.

“아버지를 그리고 엄마를 그렸다. 그 옆에 용감한 형도 멋지게 그렸다. 용감한 형 옆에 내 모습도 그려 넣었다. 우리는 귀신고래 등에 올라타 있었다. 내 옆에는 여우도 탔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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