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정민 지음, 김영사 펴냄. 2만5000원
틈만 나면 정리…카드작업·교정·제본·필사인력 풀가동
소학보전, 삼창고훈, 이아술, 기해방례변, 아학편훈의, 주역사전, 단궁잠오, 상례외편, 예의문답, 제례고정, 다산문답, 가례작의, 상례사전, 시경강의, 시경강의보, 상서고훈수략, 매씨서평, 소학주천, 아방강역고, 상서지원록, 민보의, 춘추고징, 역학서언, 논어고금주, 맹자요의, 대학공의, 중용자잠, 중용강의보, 대동수경, 소학지언, 심경밀험, 악서고존, 상의절요, 경세유표, 목민심서, 국조전례고.
강진유배기(1801~1818)에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저술·편집한 서목이다. 경집 232권, 문집 260여권. 한해 평균 두 가지의 책을 지은 셈이다. 그저 베껴쓰는데도 수십 년이 걸리는 일이란다.
그저 베껴쓰는데만 수십 년 걸릴 일…1년에 동시에 아홉 가지 작업하기
거기다가 한 가지 책을 두고 적게는 1년, 길게는 10년간 씨름했음을 감안하면 동시에 대여섯 가지 작업을 병행했음을 알 수 있다. 1810년에는 무려 아홉 가지를 동시에 진행해 마무리했다.(464~465, 56쪽) 조선 후기 학술계의 기적으로까지 일컫는 이러한 작업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낮에는 구름 그림자와 하늘빛, 밤에는 벌레소리와 대바람소리만 들리는 유배지 생활이어서였을까?
<다산선생 지식경영법>(김영사)은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한다. <한시미학산책>,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꽃들의 웃음판>, <초월의 상상>,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내가 사랑하는 삶>, <죽비소리>, <돌위에 새긴 생각>, <비슷한 것은 가짜다>, <미쳐야 미친다>.
글쟁이 정민 교수 다산 지식경영법 원용해 분석
1996년부터 10년에 걸쳐 11권의 책을 써낸 한양대 정민 교수(국문과)가 다산의 지식경영법을 원용하여 다산의 각종 저술을 분석함으로써 정리해낸 공부법이 10강 50목 200결이다. 2005년 8월부터 딱 1년동안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도서관에 머물면서 다산과 씨름한 결과다. 유배와 진배없는 시간, 다산처럼 복사뼈에 세번 구멍이 나지는 않았을 테지만 다산의 고통이 어떠했으리라는 상상은 충분했으리라.
지은이의 학교 연구실에는 둥그런 의료차트 보관대가 있다. 수백 개의 차트를 꽂아두고 빙빙 돌려가면서 꺼내볼 수 있게 돼 있다. 차트집 하나가 책 한 권의 기획안 모양을 갖추면 여기에 꽂아놓고 추가할 것이 있을 때마다 꺼내서 보충한다. 그가 ‘씨앗창고’라고 부르는 보관대는 이미 수백개 파일로 가득 차 있다. (18도, 한국의 글쟁이 ⑫ 정민)
지은이가 귀띔하는 이 책 저술과정. <다산시문집>(민족문화추진회) 9책을 몇 차례 통독하다가 떠오른 메모를 책상 앞에 따로 붙여두었다. 정보를 조직화한다, 겉만 보지 않고 의미화한다, 집체작업으로 시간을 효율화한다 등 9개 항목이다. 카드작업을 계속하면서 문목의 대강을 세웠다. 요긴한 대목을 발췌해서 초록했다. 1차 초서작업이 끝난 뒤 항목들을 재배열했다. 항목별 집필 과정에서 관련 내용이 많고적음에 따라 덜고 더하는 작업을 하고 문목을 변경하거나 추가하기도 했다.(145~147쪽)
한 수레 넘치는 보고서, 정조 명 받고 도표 1장으로 딱!
지은이가 다산시문집에서 다산의 지식경영법을 읽어낸 것은 다산이 <서경>이라는 텍스트를 고대의 인사고과와 논공행상하던 자취를 정리한 책으로 이해한 것과 흡사하다.
지은이가 초록한 카드에는 이런 내용도 분명 들어있을 테다. 정조는 화성 신도시 건립에 착수한 뒤 수원, 광주, 용인, 과천, 남양 등 여덟 고을에 명해 나무를 지속적으로 심도록 했다. 1789~1795년 7년동안 여덟 고을에서 나무를 심을 때마다 보고문이 계속 올라와 수레에 가득 싣고도 남을 지경이 됐다.
서류가 하도 많고 복잡해서 어느 고을이 무슨 나무를 심었는지 알 수가 없고 심은 나무의 총수도 파악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정조의 명에 따라 다산은 그 자료를 정리하고 파악하는 작업을 했다. 가로는 한해 열두 달 열두 칸, 세로는 여덟 고을 여덟 칸의 도표를 만들어 칸마다 그 수량을 적었다.
도표아래 나무 종류별 그루수를 따로 적었다. 이렇게 총수를 헤아려보니 소나무와 상수리 나무 등 나무가 모두 12,009,772그루였다. 결과를 보고받고 정조는 입이 딱 벌어졌다. 소 한마리가 땀을 흘릴 만한 분량을 한 장의 도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올라온 것이다. 지은이는 다산식 지식경영이 거둔 성과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고 말한다.(125~127쪽)
초고 정리 뒤 초본 만들고 수정 첨삭 거듭해 중간본 거쳐 최종본으로
다산은 끊임없이 초서하고 틈만 나면 정리했다. 열흘쯤에 한번씩 집안에 쌓여있는 서찰을 점검하여 번잡스럽거나 남의 눈에 걸릴 만한 것이 있거든 하나하나 가려내어 심한 것은 불에 태워버리고, 덜한 것은 노를 꼬고, 그 다음 것은 찢어진 벽을 바르거나 책표지로 만들어 정신을 산뜻하게 해야한다고 말한다.(461쪽)
다산은 초고를 쓰면 빈 공책에 정리해서 초본을 만들었다. 그 초본에 수정과 첨삭을 거듭해 잘못된 것은 지우고 새로운 생각은 여백에 채워넣고 그래도 부족하면 별지를 붙였다. 너무 어지러워 지저분해지면 중간본을 만든다. 그러고 나서도 계속 질정하고 수렴해서 최종본을 만든다. <주역심전> <마과회통>은 다섯번 고쳐 초고본을 완성했다.(196쪽)
다산의 다작에는 또 다른 비밀이 있다. 다산초당은 일년내내 풀가동됐다. 제자들은 역량에 따라 카드작업을 하는 사람, 베껴쓰는 사람, 교정보는 사람, 제본하는 사람 등으로 역할을 나눠 일사불란하게 작업을 했다. 작업목표가 정해지면 가장 먼저 관련정보를 수집하고 정보가 모이며 각각의 정보를 교차대조했다. 정보의 우열과 정오를 판단하고 스승이 내려준 구체적이고 상세한 지침에 따라 분량을 나눠 작업했다. 일단 이들의 1차작업이 끝나면 다산이 이를 총괄하여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잘못된 곳을 수정 검토했다.(430~431쪽) 다산이 살아돌아와 봤다면 “어, 나하고 비슷하네” 할 판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에서 다산을 정민으로 대체해 제목을 삼아도 무방할 만큼 다산과 정민은 뒤섞여 일체화돼 있다. 다만, 30권30책으로 남은 이익의 <성호사설>을 두고 자신이 정리하면 7~8책이면 충분하다고 말한 다산이 살아와 후학이 정리한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보면 “엇비슷해 구별되지 않는 항목이 눈에 띈다”는 말을 하지는 않을까.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글쟁이 정민 교수 다산 지식경영법 원용해 분석
18년의 유배기간 동안 경집 232권, 문집 260여권을 집필한 다산 정약용. 그 왕성한 생산성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외부와 절연된 유배지라는 특수성이나 복사뼈가 세번 구멍이 났다는 끈기 등의 대답으로 만족하지 못한 정민 교수가 다산시문집을 중심으로 다산의 내밀한 지식경영법을 재구해냈다. 사진은 다산의 산실이었던 다산초당. 김영사 제공
다산의 다작에는 또 다른 비밀이 있다. 다산초당은 일년내내 풀가동됐다. 제자들은 역량에 따라 카드작업을 하는 사람, 베껴쓰는 사람, 교정보는 사람, 제본하는 사람 등으로 역할을 나눠 일사불란하게 작업을 했다. 작업목표가 정해지면 가장 먼저 관련정보를 수집하고 정보가 모이며 각각의 정보를 교차대조했다. 정보의 우열과 정오를 판단하고 스승이 내려준 구체적이고 상세한 지침에 따라 분량을 나눠 작업했다. 일단 이들의 1차작업이 끝나면 다산이 이를 총괄하여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잘못된 곳을 수정 검토했다.(430~431쪽) 다산이 살아돌아와 봤다면 “어, 나하고 비슷하네” 할 판
다산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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