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영희 교수의 명화와 함께 떠나는 수학사 여행>계영희 지음, 살림 펴냄, 1만3800원
잠깐독서 / 계영희 교수의 명화와 함께 떠나는 수학사 여행
그림에서 수학의 개념과 사고를 끄집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림을 대하는 이들이 우선 수학적 엄밀함과 그것이 바탕이 된 풀이과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림은 논리의 세계라기보다는 사상과 정서의 세계에 가깝다. 굳이 계산하기보다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면 되는 일이다.
이렇게 단도리를 짓더라도 ‘미련’은 남는다. 수학적 엄밀함이란 꼭 셈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 세상의 모든 현상에서 발견하고 추구할 수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해 보자.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말할 때, 우리는 실제 형상을 찍어낸 듯 똑같이 그렸다고 한다. 비례와 척도가 필요할 것이다. 칸딘스키의 성악적 운율감이 파도치는 색의 어울림을 볼 때, 역시 우리는 완벽한 조화를 떠올린다. 감동의 근저에는 치밀한 계산이 있었을 법하다.
이런 ‘인상비평’을 품었던 독자라면 <계영희 교수의 명화와 함께 떠나는 수학사 여행>을 일독해도 좋을 듯하다. 수미일관하게 저자의 테마를 관철시키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수학과 미술의 만남이 필연일 수밖에 없음을 납득시키는 데는 무리가 없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미술의 통사적 진보는 학문으로서 수학의 진보와 한배라는 것이다.
계 교수는 그 예로 점묘파 화가 쇠라를 등장시킨다. 작은 점의 집합이 그림이 되는 것이다. 그가 처음 탄생시킨 기법이다. 흥미로운 것은 1883년에 첫 점묘파 그림과, 수학에서 칸토어의 집합론이 동시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수학에서 점들의 집합이 곡선과 곡면이 되듯, 회화에서 점집합이 사람과 나무로 표현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칸토어의 집합론 발표 이후 수학의 추상화 작업이 시작됐다. ‘세잔느의 세계’를 영접하려는 듯이. 저자는 세잔느의 사과 그림에 대응하는 수학적 이론으로 ‘토폴로지’(위상수학)를 내세운다. 연속함수에 의해 점이 점으로 옮겨가는 것만을 문제삼는 토폴로지의 세계에선 넓이, 크기, 길이와 관계없이 삼각형과 사각형 그리고 원이 합동이 될 수 있다.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모습을 하나의 공간에 퍼즐처럼 조합해 원근법을 파괴한 세잔의 사과 그림은 유클리드적 3차원의 공간을 파괴하고 있다. 마티스와 피카소의 그림에서도, 길이와 크기 면적은 의미없는 요소가 됐다. 위상변환이 미술에 일어난 것이다.
수학과 미술의 이름을 달았으나 이집트 이후 서양문명사에 대한 종합적인 인용과 고찰이 더해져 있어 학생 교양서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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