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팔라레스-버크 지음, 곽차섭 옮김,푸른역사 펴냄. 값 2만5000원
잠깐독서/
영화배우 워런 베이티나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 영국총리를 지낸 마거릿 대처는 그들이 응한 인터뷰 내용을 그들도 녹음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말로 나눈 인터뷰를 글로 옮길 때 입맛대로 짜깁기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언론의 횡포에 꽤나 시달린 모양이다. 지은이 팔라레스-버크는 그럼에도 인터뷰의 미덕은 말한 사람의 생각을 충실하게 전달하기보다는 표현방식이나 어조에서 풍기는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역사학계 거장들과의 대화를 담은 <탐사>는 잭 구디, 에이사 브릭스, 내털리 제이먼 데이비스, 케이쓰 토머스, 다니엘 로슈, 피터 버크, 로버트 단턴, 카를로 긴즈부르그, 퀜틴 스키너 등 모두 아홉 명을 인터뷰했다. 이 책은 그들의 고백이며 그들 간의 대화다. 치밀한 질문과 치열한 답변들은 각각 인터뷰한 역사가가 어느새 토론을 벌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를테면 요즘 유행하는 미시사에 대해 잭 구디는 “좀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고 옹호한다. 이에 대해 내털리 데이비스는 “좋은 미시사를 쓰기 위해서는 세세한 측면들의 증거들, 즉 전체사의 조망이 요구”된다고 반박한다. 아날학파, 비교문화사, 인류학, 마르크스주의, 미쉘 푸코에 관한 토론들도 만날 수 있다. 경계를 허무는 역사학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단선적 발전론과 서구적 근대화론을 부정하고, 과거와 현재를 문화적 차이라는 시각에서 이해하면서 모든 문화는 문화혼합의 결과임을 힘줘 말한다.
거장들이 젊은 역사가에게 던지는 조언. 긴즈부르그는 “도덕적 상상력을 자극하려면 소설을 읽어라”고, 기자 출신 로버트 단턴은 “살인과 강도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로 일해 보라”고, 퀜틴 스키너는 “푸코처럼 자신들의 관습에 대해 고찰한 철학자를 읽으라”고 충고한다. 역사학자인 옮긴이 곽차섭 교수는 꽃의 문화를 비교한 구디를 보며 “수로부인에게 꽃을 꺾어 바쳤다는 향가의 한 대목을 떠올렸”고 주변부 지식인으로 남겠다는 긴즈부르그의 말에서 “권력과의 거리두기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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