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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정길연 자전소설 ‘나를 키운 8할의 인물들’

등록 2007-02-15 18:15

 <나의 은밀한 이름들> 정길연 지음.향연 펴냄. 9500원
<나의 은밀한 이름들> 정길연 지음.향연 펴냄. 9500원
잠깐독서 /

<변명>의 작가 정길연씨가 자전적 장편소설 <나의 은밀한 이름들>을 내놓았다. 소설은 에필로그를 포함해 모두 일곱 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첫장 ‘위옥’과 네 번째 장 ‘열일곱’에서 ‘아이’라는 삼인칭으로 불리는 주인공, 그리고 에필로그의 ‘나’가 작가 자신을 모델로 삼은 인물이다. 나머지 장들은 작가의 어릴 적 친구와 어머니, 아들 등 주변 사람들을 화자로 삼아 작가를 관찰하는 한편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성을 취한다.

부와 재능을 타고났지만 “치마폭이면 그저 엎어지지 못해 안달인 헤픈 심사”를 지닌 바람둥이 아버지, 그 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이었으나 버림받은 ‘울산엄마’, 의붓아버지에게 성 추행을 당하며 끊임없이 가출을 꿈꾸던 소녀적 친구 ‘수련’, 그리고 지금의 작가가 “함께 쓸 책에 관해 계획을 세우”는 ‘당신’이 모두 작가의 ‘은밀한 이름들’이 된다.

소설의 핵심은 일곱 개 장의 가운데에 놓인 제4장 ‘열일곱’으로 분량도 가장 길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작가의 열일곱 살 시절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훗날 제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한 시절로(…)떠올리게” 되었다는 이때,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허약체질인데다 수업 시간에 시를 쓰다 발각되어 선생님에게 크게 꾸중을 들은 그는 병을 핑계 대고 1년 동안 학교를 쉰다. 일찍 여읜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한 어머니는 딸의 그런 결정을 너그러이 용인한다. 그 다음은 무한한 자유.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으면 무작정 여장을 꾸려서는 기약 없는 여행길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인간과 세계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소설 공부를 제대로 한 것이다. “모든 일이 일어나고, 모든 일이 가능했고, 모든 일을 알아버린 열일곱 살”의 경험은 확실히 그의 삶과 문학의 초석으로 굳건히 버티고 있다.

아들을 화자로 삼은 장 ‘눌이’에서 작가의 아들은 열일곱 시절 작가 자신과 많이 닮았다. 학교 공부나 세속적 성공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더 열심히 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제 그 자신이 어머니가 된 작가는 그런 아들을 한껏 내버려둔다. “나는 네가 구두를 닦더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 작가는 열일곱 시절의 자신을 믿음으로 지켜보았던 어머니를 대신해서 말하는 듯하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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