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규/자유저술가 저자
김용규의 문학 속 철학산책 /〈모모〉를 통해서 본 ‘시간’의 의미
미하엘 엔데의 〈모모〉는 ‘우리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모모〉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시간이 있다. 하나는 회색신사들이 가진 시간으로 우리가 시계로 재는 ‘물리적인 시간’이다. 이 시간은 미래에서 다가와 쏜살같이 과거로 흘러가 버린다. 때문에 마치 돈처럼 가능한 한 저축하고 절약해야만 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사람들이 이런 시간에만 맞춰 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시간은 돈이다”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 금언이 되었고, 우리 모두는 시간에 가난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 이전 사람들은 훨씬 풍요로운 시간 속에서 살았다. 해가 떠 밝아지면 하루를 시작하는 기쁨으로 들로 나가고, 저녁이 와 어두워지면 멀리 교회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그날 일어난 모든 것에 대해 신께 감사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밀레가 그린 〈만종〉이 바로 이런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잘 보여 준다.
모든 것은 산업혁명이 일어나 공장들이 생겨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산업문명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는 ※소설 〈모모〉에서 회색신사들이 그런 것처럼※ 대량생산에 의한 물질적 풍요, 절대적 자유, 무한한 행복을 약속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교회의 첨탑에서 종(鐘)을 끌어내리고 그곳에 시계를 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을 아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분명 물질적으로는 전보다 더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더 자유로워지거나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대가 되었다. 〈모모〉에서 회색신사들이 온 다음 마을 사람들도 그랬다. 회색신사들은 산업문명과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그러자 반성과 자각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물질적 욕망을 채우는 것이 결코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쾌락적이지만 더 불행한 삶의 경험들을 통해서였다. 부자가 되었지만 동시에 노예가 되었다는 의식도 생겨났다. 물질적 풍요는 분명 하나의 가치이지만 그 밖에도 잃어서는 안 될 가치들이 많다는 생각도 싹텄다. 무엇보다도 자유롭게 살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소설 〈모모〉가 태어난 것이다. 〈모모〉는 시간의 노예가 된 우리들의 불행한 삶을 고발하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시간을 보여 준다. 그것은 호라 박사와 모모가 가진 ‘심리적 시간’이다. 이 시간은 시계로 재는 시간이 아니다. 오직 우리의 마음으로 재는 시간이다. 호라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는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장님에게는 무지개의 고운 빛깔이 보이지 않고, 귀머거리에게는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지.”
마음의 시간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가 언제나 현재 속에 함께하는 시간이다. 과거는 ‘기억’으로 현재 안에 있고, 미래도 역시 ‘기대’로 현재 안에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준다. 우리의 몸은 어쩔 수 없이 ‘물리적 시간’을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항상 ‘심리적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우선 아름답고 좋은 ‘기억’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희망차고 바람직한 ‘기대’들도 가져야 한다. 누구도 추하고 나쁜 기억만을 갖고, 또 바람직한 희망조차 없는데 행복할 수는 없다. “추억이 없는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보다 더 가난하다”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는 사람은 예금이 없는 사람보다 더 비참하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시간이란 우리가 아름다운 기억과 희망찬 기대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어떤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다. 기회다. 〈모모〉에는 시간의 노예에서 다시 해방된 사람들의 모습이 다음 같이 그려져 있다. “이제 대도시에는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광경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길 한복판에 나와서 놀고, 아이들이 비키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운전사들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어디서나 사람들이 서서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자세히 물었다. 일하러 가는 사람도 창가에 놓인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거나 새에게 모이를 줄 시간이 있었다. 의사들은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껏 돌볼 시간이 있었다. 노동자들도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편안히 일할 수 있었다.” 그럼 생각해 보자.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를. “시간이란 마음의 삶이다”라는 플로티노스의 말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생각해 보자. 자유저술가·〈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저자
그렇다! 시간이란 우리가 아름다운 기억과 희망찬 기대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어떤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다. 기회다. 〈모모〉에는 시간의 노예에서 다시 해방된 사람들의 모습이 다음 같이 그려져 있다. “이제 대도시에는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광경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길 한복판에 나와서 놀고, 아이들이 비키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운전사들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어디서나 사람들이 서서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자세히 물었다. 일하러 가는 사람도 창가에 놓인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거나 새에게 모이를 줄 시간이 있었다. 의사들은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껏 돌볼 시간이 있었다. 노동자들도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편안히 일할 수 있었다.” 그럼 생각해 보자.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를. “시간이란 마음의 삶이다”라는 플로티노스의 말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생각해 보자. 자유저술가·〈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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