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레프트, 왼손잡이가 세상을 바꾼다>
정재승의 책으로 만난 과학 / <호모레프트, 왼손잡이가 세상을 바꾼다>데이비드 올먼 지음. 신현승 옮김/황금나침반
과학소설가 어슐러 르 귄이 말하길, ‘빛은 어둠의 왼손이며 어둠은 빛의 오른손이다.’ 빛이 없으면 어둠이 없듯이, 삶과 죽음은 결국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얘기다. 르 귄의 말처럼 밝고 올바른 세상은 오른손이 떠받치고 있으며, 어둡고 사악한 세상은 왼손에 의해 돌아간다고 오랫동안 사람들은 믿었다. 세상 사람들의 90%는 화장실 변기의 물을 내릴 때나, 왼쪽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낼 때에만 왼손을 사용한다. 과학자들은, 침팬지를 포함해 대부분의 동물들은 왼손잡이로 살아갈 확률이 50%지만, 인간은 10~12%만이 왼손잡이이며 그나마 대한민국에선 5%도 채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왼손잡이들끼리 만나면 무척 반갑다. 나 같은 왼손잡이들은 밥을 왼손으로 먹는 사람을 보면 말을 걸 용기가 생기고, 글씨를 왼손으로 쓰는 사람을 보면 무조건 반갑다. 아인슈타인이나 뉴턴, 프로이트 같은 천재들이 왼손잡이였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기도 하고 빌 클린턴이 대통령 시절 왼손으로 멋지게 사인을 하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우쭐해하면서, 어린 시절 학교에서 선생님께 꾸중 들었던 기억을 털어내려 애쓴다.
영국의 과학주간지 〈뉴 사이언티스트〉에 종종 맛깔 나는 칼럼을 실었던 데이비드 올먼이 왼손잡이를 위한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왼손잡이의 생물학적 기원에서부터 전세계 문화사에 이르기까지 왼손잡이에 대한 잡학사전을 읊어댄다. 왼손잡이들이 머리가 더 좋다는 선입견은 사실이 아니며, 돈을 더 많이 번다는 통계는 사실이라고 일러준다. 왼손잡이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이 높다거나 난독증과 같은 언어장애에 시달릴 확률이 높은 반면, 우뇌형 사고에 능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공감을 쉽게 이끌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놀라운 것은 아직 우리가 왼손잡이에 대해 너무나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유전적인 요인인지, 아닌지도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그나마 지금과 같은 수준의 왼손잡이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된 데에는 두 명의 과학자가 있었다.
한 사람은 왼손잡이들의 예언자이자 그들의 우뇌를 처음 일깨워준 신경해부학자 브로카인데, 그는 좌뇌와 우뇌의 기능을 밝히고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평생을 보냈다. 다른 한 사람은 도쿄대 의대에서 ‘왼손잡이’의 탄생과 모든 비대칭의 근원을 추적하고 있는 히로카와 노부타카다. 그는 자연의 법칙은 본
질적으로 대칭을 선호하지만, 시스템은 대칭을 파괴하는 속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우주의 기원으로 돌아가 다시 진화를 시작한다고 해도, 우리는 오른쪽과 왼쪽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엔 우리가 왼쪽을 선호하게 된다 하더라도, 다시 시작한 운명의 세계에선 ‘빛이 어둠의 오른손’이겠지만 말이다.
8월13일은 세계 왼손잡이의 날이었다. 영국 왼손잡이협회가 1992년에 만든 이 날, 왼손잡이는 이런 구호를 외친다. ‘모든 사람은 오른손잡이로 태어난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사람만이 그것을 극복한다.’ 이 구호가 그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기를.
정재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정재승/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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