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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유교 문학은 글재주 이상의 사상 담아”

등록 2007-11-02 20:06

임형택 교수
임형택 교수
인터뷰 / 〈우리 고전을 찾아서〉펴낸 임형택 교수

임형택 성균관대 교수(한문학)는 지난 30년 동안 우리 조상들이 남긴 원전을 출간하거나 번역 출판해 학계와 대중에 알리는 데 힘써 왔다.

그가 인사동 고서점이나 도서관 서가에서 찾아내 소개함으로써 학계의 관심을 받게 된 옛 학자들도 여럿이다. 현실주의 시정신의 다채로운 성취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진명 권헌(1713~1770)이나 개항을 앞둔 시점에서 서양 종교에 맞선 대항 사상 정립에 몰두했던 심대윤(자 진경·1806~1872) 등이 대표적이다.

그가 지난 30년 동안 옛 우리 책을 소개한 출판물에 쓴 해제를 묶어 한 권의 책을 펴냈다. 〈우리 고전을 찾아서-한국의 사상과 문화의 뿌리〉(한길사 펴냄·2만6000원·사진). 고려말 유학자 목은 이색(1328~96)의 〈목은집〉에서부터 월북 소설가 이태준(1904~?)의 작품 〈해방 전후〉까지 소개됐으니 600여년의 시간격을 두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고전들은 일관된 체계에 의해 추려지지는 않았다. “햇빛을 보지 못했던 것들 가운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새로 발굴한 것과 이미 널리 알려진 것 가운데 재평가가 필요한 것들이 수록되었지요.” 전자가 권헌의 〈진명집〉, 심대윤의 〈심대윤 전집〉, 노명흠(1713~1775)의 〈동패낙송〉이라면, 후자는 이항복(1556~1618)의 〈백사집〉,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 정약용(1762~1836)의 〈목민심서〉, 황현(1855~1910)의 〈매천야록〉이다.

그는 특히 몰락한 소론계열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나 호구지책으로 안성읍내에서 장사를 하며 학문을 닦았던 심대윤에 주목했다. “그는 위기의 시대인 19세기에 서양의 사상적 침투에 맞서 어떻게 사상적으로 대응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그 대답은 인간의 욕망과 이익추구를 긍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성리학과 완전히 다른 체계이자 근대적 각성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이전에 이런 생각을 뚜렷이 제기한 이는 없었습니다. 동시대 인물인 다산과는 다른 측면에서 사상의 체계를 세웠습니다.” 나에게 이로우면 남에게 해로운 것이 이(利)가 아닌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심대윤의 해답은 “남과 더불어 ‘이’를 취하는 ‘여인동리’”와, “남과 나의 이해를 저울질해서 한편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지공지도(至公之道)”였다고 임 교수는 풀었다.


고려말서 ‘해방전후’까지 600년 고전 한눈에
권헌·심대윤 등 저작 새로 발굴해 소개하며
‘열하일기’ ‘목민심서’ 등 알려진 저서 재평가까지
“한문학과 우리말문학 경계 허물고 하나로”

그는 권헌에 대해선 “중요한 시인이지만 완전히 사장되어 있었다”며 “리얼리스트로서의 성과가 그분만큼 풍부한 내용을 가진 시인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극찬했다. ‘관북민’과 ‘시노비’와 같은 장편시는 “가난하고 비천한 인생을 인간적 신뢰와 애정을 가지고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여 서사적 전향을 생동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재해석에 가장 공을 들인 책은 〈열하일기〉이다. 지금까지는 중국의 생산기술을 도입한다는 북학론적 관점에서 읽혔으나 그가 보기에는 중국을 통한 세계 인식에 더 큰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고전을 찾아서〉
〈우리 고전을 찾아서〉
그는 박지원은 당시 시대상황을 ‘어두운 밤’으로 인식하고 천하대세의 전망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연암이 상하 각층 인간 군상의 삶과 행동 양식과 그들 가슴속에 무슨 뜻들을 감추고 있는지 가지가지 수단을 동원해 살펴본 것도 이런 맥락에서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역사의 주체는 인간’이라는 연암의 확신이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곁들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빼어난 문장가와 올곧은 사상가 가운데 그의 마음을 가장 강렬히 빼앗은 이는 이항복이다. 그는 선조·광해군 사이의 명재상으로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공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세상을 경륜하면서 학문과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융통성도 있으면서 진정한 애국자였지요. 또 ‘공’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문학가로서는 박지원, 학자로서는 정약용을 첫손으로 꼽았다.

임 교수는 유교적 문학관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냥 글재주가 아닙니다. 사상성과 내용성을 더 중요하게 보는 견해이죠.” 그렇다고 문학의 독자성을 주장한 용재 성현(1439~1504) 같은 학자가 유교적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유교적 문학 안에도 다른 견해들이 있습니다. 유교가 그만큼 폭이 넓다고 해야겠죠.” 그래서 그에게 좋은 사상과 좋은 문장은 한묶음이다. “이태준과 홍명희 같은 분 역시 문장도 명문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생각이 좋았습니다.”

최근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는 국문학 연구에서 탈근대·탈민족 관점으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임 교수는 강 교수가 제자란 점을 밝히며, 조심스럽게 “민족을 앞세우는 학문 의식을 탈피하는 것은 좋다고 보지만, 통일 과제도 있는 상황에서 내화된 민족의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근대에서 근대까지 또 한문학에서 우리말 문학까지 통일적으로 인식해야” 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한문학과 우리말 문학의 경계 나누기가 아니라 경계를 허물어 하나로 아울러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가 인간을 쾌락적 향락적인 쪽으로 몰고 있습니다. 인간 존재가 생각하는 동물인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생각하는 인간에 대해 썩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성해야 합니다.” 내년 정년을 맞는 노학자의 염려이자 충언이다.

글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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