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고딩들의 일본 탐험기〉
〈거침없는 고딩들의 일본 탐험기〉 김영민 외 지음. 푸른길·1만3000원
민사고 학생들 일본 교육현장 탐방
대학까지 자동진학 ‘일관교육제’ 분석
“문제 근본은 제도아닌 일류대병”결론 ‘4당5락(4시간 자면 합격, 5시간 자면 낙방)’의 입시지옥에 사는 대한민국의 고교생, 그것도 수재들만 모여 치열한 경쟁을 하는 민족사관고등학교의 2학년 ‘고딩 4명’이 8박9일씩이나 수업을 ‘땡땡이’치고 일본 여행에 도전했다. 2006년 9월 국가청소년위원회와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에서 공동 주관한 ‘대한민국 청소년 일본 탐험대’ 프로그램 공모에서 선발된 것이다. 그 후 1년 그 경험을 담아 책까지 냈다. 여기까지만 읽는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도 “평범한 고딩을 둔 부모로서 마음이 불편했다”는 편집자의 심정을 미뤄 짐작할 법하다. 더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어려운 ‘교육 불평등시대’에 소수 똑똑한 아이들의 특별한 얘기가 공감을 사기엔 무리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읽다 보니 점점 아이들의 힘에 동화돼 갔다’는 편집자의 말처럼 이들의 글에는 편견의 막을 걷어내게 하는, 뭔가가 있다. 무엇보다, 결심에서 출국까지 52일에 걸친 준비과정이, 일본 내 활동기 못지않게 흥미롭고 유익하다. “너 나랑 같이 일본 탐험대 해볼래? 메신저 창에 뜬 제안을 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정다은) “〈미스터 초밥왕〉에 나오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맛있다는 초밥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선뜻 동의했다. 그것도 공짜라는데.”(정수화) “할까 말까, 재미있을까, 보람 있을까, 대학 갈 때 도움이 될까.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 그래 할게.”(김영민) “지난 학기에 낙방한 경험도 있어서 처음엔 망설였다. 하지만 나(내 일어 실력)를 필요로 하는 친구들 생각에 용기를 냈다.”(박해인) 중간고사를 코앞에 두고 ‘모험’을 선택한 이들의 동기는 또래 아이들답게 충동과 설렘과 망설임이 엇갈린다. 필수 응모조건인 ‘유창한 일본어 구사자 1명’을 중심으로 남녀 2명씩 ‘이심전심’팀을 꾸린 이들은 어떤 주제로 어떤 관점에서 접근할까를 두고 며칠씩 토론을 했다. 갑론을박 끝에 주제가 바뀌면서 애초 제안자가 팀에서 빠지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마침내 찾아낸 주제는 이 땅의 고딩들에게 가장 절박한 관심사인 ‘일본 학생들의 대학 진학 문제’, 그중에서도 일관교육 제도였다.
흔히 에스컬레이터식 교육으로 유명한 일관교육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대학을 포함해 같은 재단의 상급학교에 별도의 시험 없이 진학이 가능한 제도다. 기부금입학제를 두고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맞서는 우리와 달리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합의됐다는 사실, 그리고 그 제도 때문에 유치원 입학 때부터 경쟁이 치열해 유아살인사건까지 일어났다는 기사가 이들의 호기심을 반짝이게 했다.
가장 큰 난관은, 일본 학교의 방문허가를 받는 것이었다. 와세다, 게이오를 비롯해 다섯 곳의 명문 사립재단과 세 곳의 공립고에 메일과 팩스로 요청했으나 처음엔 정중한 거절만 돌아왔다. 사전오기 끝에 세 곳에서 ‘예외적인 허가’를 받아낸 이들은 시험공부까지 제치고 A4용지 20장 분량이 넘치도록 꽉 찬 활동계획서를 완성해 마감시간 1시간 전 간신히 접수를 시켰다. ‘우리를 선발해주지 않으면 한일관계 신뢰에 금이 간다’는 호기를 부린 끝에 면접을 통과하고 발표회까지 무려 15단계 관문을 통과했다.
2006년 11월13일 마침내 인천공항을 출국한 이들, 그러나 나리타공항을 벗어나기도 전에 여권분실(당사자는 도난이라 주장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난생 첫 일본 탐험기는 수난기를 예고한다.
하지만 오로지 패기와 재치로 갖가지 고비를 넘기며 ‘일관교육제’의 장단점을 비교해본 이들의 결론은 그래서 가볍지 않은 울림을 던져준다. “근본적인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반드시 일류대학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있는 것 아닐까?”
13년째 양국의 교육현장을 답사하며 교류해온 한일합동교육연구회의 교사들조차 간과한 문제를 ‘거침없이’ 탐구해낸 아이들의 잠재력이 놀랍고 신선하다. 때문에 이 책은 어쩌면 어른들에게 먼저 익혀야 할 듯싶다. 특히, 연수니 견학이니 온갖 명목으로 국민의 혈세를 빼내 외유 경쟁을 하고, 나가서는 쇼핑이니 골프니 ‘잿밥’만 밝히고, 빈손으로 귀국해서 날림 보고서 한 장 베껴내고도, 당당히 변명하며 면피에 바쁜 ‘어르신네’들에게 꼭 한번 읽히고 싶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대학까지 자동진학 ‘일관교육제’ 분석
“문제 근본은 제도아닌 일류대병”결론 ‘4당5락(4시간 자면 합격, 5시간 자면 낙방)’의 입시지옥에 사는 대한민국의 고교생, 그것도 수재들만 모여 치열한 경쟁을 하는 민족사관고등학교의 2학년 ‘고딩 4명’이 8박9일씩이나 수업을 ‘땡땡이’치고 일본 여행에 도전했다. 2006년 9월 국가청소년위원회와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에서 공동 주관한 ‘대한민국 청소년 일본 탐험대’ 프로그램 공모에서 선발된 것이다. 그 후 1년 그 경험을 담아 책까지 냈다. 여기까지만 읽는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도 “평범한 고딩을 둔 부모로서 마음이 불편했다”는 편집자의 심정을 미뤄 짐작할 법하다. 더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어려운 ‘교육 불평등시대’에 소수 똑똑한 아이들의 특별한 얘기가 공감을 사기엔 무리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읽다 보니 점점 아이들의 힘에 동화돼 갔다’는 편집자의 말처럼 이들의 글에는 편견의 막을 걷어내게 하는, 뭔가가 있다. 무엇보다, 결심에서 출국까지 52일에 걸친 준비과정이, 일본 내 활동기 못지않게 흥미롭고 유익하다. “너 나랑 같이 일본 탐험대 해볼래? 메신저 창에 뜬 제안을 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정다은) “〈미스터 초밥왕〉에 나오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맛있다는 초밥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선뜻 동의했다. 그것도 공짜라는데.”(정수화) “할까 말까, 재미있을까, 보람 있을까, 대학 갈 때 도움이 될까.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 그래 할게.”(김영민) “지난 학기에 낙방한 경험도 있어서 처음엔 망설였다. 하지만 나(내 일어 실력)를 필요로 하는 친구들 생각에 용기를 냈다.”(박해인) 중간고사를 코앞에 두고 ‘모험’을 선택한 이들의 동기는 또래 아이들답게 충동과 설렘과 망설임이 엇갈린다. 필수 응모조건인 ‘유창한 일본어 구사자 1명’을 중심으로 남녀 2명씩 ‘이심전심’팀을 꾸린 이들은 어떤 주제로 어떤 관점에서 접근할까를 두고 며칠씩 토론을 했다. 갑론을박 끝에 주제가 바뀌면서 애초 제안자가 팀에서 빠지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마침내 찾아낸 주제는 이 땅의 고딩들에게 가장 절박한 관심사인 ‘일본 학생들의 대학 진학 문제’, 그중에서도 일관교육 제도였다.
민사고 학생들이 일본 와세다 고등학교 검도부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푸른길 제공.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