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멸종〉
정재승의 책으로 만난 과학 /
〈대멸종〉
마이클 벤턴 지음·류운 옮김/뿌리와이파리·2만8000원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침대 맡 필수품 중 하나는 고생물학 서적이다. 고생물학에 관한 책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분들에겐 좀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수억년 전 지구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 안에서 살았던 수많은 생물종들의 진화를 더듬는 경험은 팍팍한 삶을 한발 떨어져 관조하게 만든다. 특히나 ‘멸종’을 다루고 있는 고생물학서적은 일상적 걱정을 사소한 것으로 날려버리는 마력이 있다. 그런 점에서 마이클 벤턴의 <대멸종>은 ‘강추’할 만한 책이다. 출판사 뿌리와이파리는 ‘오파비니아 시리즈’를 통해 지구 위 생태계의 진화를 다룬 책들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는데, <대멸종>도 그 중 하나다. 기꺼이 격려할 만한 일이다. 사명감 없이는 내기 힘든 책들이니 말이다. 고생물학서적이 매력적인 이유는 화석과 지구 환경을 조사해 지질학적 연대기를 구성해내는 과정을 추적자의 심정으로 즐길 수 있어서다. 범인을 추리해나가는 탐정 소설을 읽는 기분이랄까? 그런 점에서 벤턴의 글쓰기 방식은 고생물학의 매력을 잘 드러낸다. 이 책은 대멸종에 대한 지식을 읊어주는 ‘지구과학 교과서’가 아니라, 고생대와 중생대라는 코끼리를 더듬는 장님 고생물학자들의 논쟁사에 오히려 더 가깝다. 리처드 오언과 로더릭 머치슨을 비롯해 지난 150년간 지질학의 역사를 다시 쓴 고생물학자들과 지질학자들의 숨막히는 경쟁과 탐구정신은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결코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결코 결론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과학적 상상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기에 그들의 흥미로운 지적 여행을 이렇게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생태계에겐 지금까지 다섯 번의 큰 멸종이 찾아왔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공룡을 포함해 지구 생명체의 반 이상을 멸종시킨 6천5백만 년 전의 멸종이지만, 진화사 최대의 멸종 사건은 지금부터 2억 5천만 년 전 페름기 말에 있었던 대멸종이었다. 지구 위 생명체의 90%를 쓸어낸 이 사상 최악의 멸종은 도대체 왜 일어난 것일까? 지금은 상식이 돼버린 대멸종의 존재를 우리가 받아들이게 된 것은 생각보다 최근 일이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전지전능한 신이 만든 생태계가 ‘멸종’이라는 생태계의 오류를 범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오랜 논쟁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고 화산활동이 거칠어져 산성비와 먼지구름으로 지구가 덮이게 되자, 차단된 햇빛으로 인해 혹독한 추위가 오랫동안 지속됐다. 만약 이 시기에 10%의 생명체마저 살아남지 못했다면, 특히나 다시 생물체들을 번성시킬 종자생물들이 멸종했다면 생명수의 가지 끝에 와 있는 우리의 운명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면 뇌 한 켠에 깊은 깨달음 하나가 울린다. 이 책을 포함해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대멸종이 미처 다 쓸어내지 못하고 남기고 간 것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소중한 유산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오늘 나의 고민은 대멸종 앞에서 한없이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마이클 벤턴 지음·류운 옮김/뿌리와이파리·2만8000원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침대 맡 필수품 중 하나는 고생물학 서적이다. 고생물학에 관한 책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분들에겐 좀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수억년 전 지구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 안에서 살았던 수많은 생물종들의 진화를 더듬는 경험은 팍팍한 삶을 한발 떨어져 관조하게 만든다. 특히나 ‘멸종’을 다루고 있는 고생물학서적은 일상적 걱정을 사소한 것으로 날려버리는 마력이 있다. 그런 점에서 마이클 벤턴의 <대멸종>은 ‘강추’할 만한 책이다. 출판사 뿌리와이파리는 ‘오파비니아 시리즈’를 통해 지구 위 생태계의 진화를 다룬 책들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는데, <대멸종>도 그 중 하나다. 기꺼이 격려할 만한 일이다. 사명감 없이는 내기 힘든 책들이니 말이다. 고생물학서적이 매력적인 이유는 화석과 지구 환경을 조사해 지질학적 연대기를 구성해내는 과정을 추적자의 심정으로 즐길 수 있어서다. 범인을 추리해나가는 탐정 소설을 읽는 기분이랄까? 그런 점에서 벤턴의 글쓰기 방식은 고생물학의 매력을 잘 드러낸다. 이 책은 대멸종에 대한 지식을 읊어주는 ‘지구과학 교과서’가 아니라, 고생대와 중생대라는 코끼리를 더듬는 장님 고생물학자들의 논쟁사에 오히려 더 가깝다. 리처드 오언과 로더릭 머치슨을 비롯해 지난 150년간 지질학의 역사를 다시 쓴 고생물학자들과 지질학자들의 숨막히는 경쟁과 탐구정신은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결코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결코 결론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과학적 상상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기에 그들의 흥미로운 지적 여행을 이렇게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생태계에겐 지금까지 다섯 번의 큰 멸종이 찾아왔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공룡을 포함해 지구 생명체의 반 이상을 멸종시킨 6천5백만 년 전의 멸종이지만, 진화사 최대의 멸종 사건은 지금부터 2억 5천만 년 전 페름기 말에 있었던 대멸종이었다. 지구 위 생명체의 90%를 쓸어낸 이 사상 최악의 멸종은 도대체 왜 일어난 것일까? 지금은 상식이 돼버린 대멸종의 존재를 우리가 받아들이게 된 것은 생각보다 최근 일이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전지전능한 신이 만든 생태계가 ‘멸종’이라는 생태계의 오류를 범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오랜 논쟁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정재승의 책으로 만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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