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전 4권)〉
신화·민담 속 역동적 캐릭터 85명
백정·기생 등 ‘소수자’들의 주체적 삶
봉건적 사슬에 맞선 당찬 여성상도
백정·기생 등 ‘소수자’들의 주체적 삶
봉건적 사슬에 맞선 당찬 여성상도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전 4권)〉
서대석 엮음. 신동흔 외 85명 지음/휴머니스트, 각 권 1만5천원. 문) 우리 고전에서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 10명을 나열하시오. 답) 효녀 심청, 성춘향과 이몽룡, 흥부와 놀부, 평강 공주와 온달 장군, 옹녀와 변강쇠, 홍길동과 허이녹?…??? 그리 까다롭지 않은 문제 같지만, 막상 쓰려고 보니 곧 막히고 만다. 아마도 이 분야 연구자나 입시생들이 아니라면 대부분 비슷하지 싶다. 문제를 바꿔서, 청소년들에게 좋아하는 캐릭터를 꼽으라면 어떨까? 아마도 게임과 판타지 소설과 만화영화 속 인물들로 가득 찬 답안지를 자신 있게 내놓을 듯싶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의 인물들을 모르면 외계인 취급을 받을 것이 분명한 세대에게 우리 고전 인물들을 묻는 질문 자체가 난센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모르는 만큼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역발상을 시도한 사람들이 있다. 당대 한국 고전문학계의 대표적인 연구자 85명이 그들이다. 스승인 서대석(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의 정년퇴임을 기념해 후학들이 뜻을 모은 것이다. 임재해ㆍ박경신ㆍ박진태ㆍ황루시ㆍ강진옥ㆍ김종철ㆍ정출헌 교수를 비롯해 소장 연구자들, 박사급 신진 연구자들까지 망라했다. 서 교수를 비롯한 지은이들이 저마다 한 명씩, 우리 고전 속에 묻혀 있던 무려 85명의 인물을 새롭게 발굴하거나 재해석해 놓았다. 권선징악, 개과천선, 인과응보, 고진감래 등으로 상징되는 교과서식 상투적인 해석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역력하다. 그 덕분에 우리 주변이나 현대문학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 다양한 욕망과 콤플렉스와 다중성까지 지닌 복합적이고 역동적이며 입체적인 인물들이 즐비하다.
유리, 최치원, 옹녀, 박문수, 이몽룡, 황진이, 춘풍의 처, 장화와 홍련 같은 익숙한 인물들은 몇 안 된다. 석숭, 방학중, 비형, 민옹, 수명장자, 당금애기, 삼족구, 덴동어미 같은 이름들은 난생처음 듣는 듯 생경하다.
하지만 한 장만 읽어보면 이내 친숙해진다. 양이목사나 궤내깃또 같은 신화 속 인물부터 강임, 바리공주, 강감찬, 오늘이 등 무속의 신들, 얼마 전까지 탑골공원에서 구연자 김한유(금자탑)씨가 들려줘 인기를 끌었다는 ‘천하장사 대장부’ 홍대권(아래 그림) 같은 민담 주인공까지 민중들의 삶 속에서 구전으로 만들어진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고아, 장애인, 백정, 기생 같은 소수자들이 시대적 억압이나 운명의 굴레를 뚫고 주체적으로 삶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들은, 고전이 왜 끊임없이 새롭게 읽혀야 하는지 새삼 느끼게 해준다.
무엇보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능동적이고 용기 있게 사랑, 자유, 독립을 추구한 여성들이 수십명이나 등장해 신선한 충격을 준다. 벼슬을 사려고 재상의 첩으로 딸을 팔려는 비정한 아버지에 맞서 기생을 택하고 끝내는 사랑까지 이뤄내는 채봉, 미모ㆍ지조ㆍ문무의 능력까지 갖춰 사랑은 물론 전장에서 신출귀몰 활약해 제후에 오른 강남홍, 남장을 하고 전쟁에 나가 나라를 구한 여성 영웅 하옥주(오른쪽 그림), 관기의 숙명을 탈출해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이룬 옥소선 …, 한마디로 대장금의 원형들이 차고 넘친다.
우리 고전을 고리타분하게만 느끼는 게임세대들은 물론이고, 상상력과 콘텐츠 고갈로 목말라 하는 대중문화 창작자들에게 ‘강추’할 만한 ‘이야기의 보고’가 아닐 수 없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서대석 엮음. 신동흔 외 85명 지음/휴머니스트, 각 권 1만5천원. 문) 우리 고전에서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 10명을 나열하시오. 답) 효녀 심청, 성춘향과 이몽룡, 흥부와 놀부, 평강 공주와 온달 장군, 옹녀와 변강쇠, 홍길동과 허이녹?…??? 그리 까다롭지 않은 문제 같지만, 막상 쓰려고 보니 곧 막히고 만다. 아마도 이 분야 연구자나 입시생들이 아니라면 대부분 비슷하지 싶다. 문제를 바꿔서, 청소년들에게 좋아하는 캐릭터를 꼽으라면 어떨까? 아마도 게임과 판타지 소설과 만화영화 속 인물들로 가득 찬 답안지를 자신 있게 내놓을 듯싶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의 인물들을 모르면 외계인 취급을 받을 것이 분명한 세대에게 우리 고전 인물들을 묻는 질문 자체가 난센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모르는 만큼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역발상을 시도한 사람들이 있다. 당대 한국 고전문학계의 대표적인 연구자 85명이 그들이다. 스승인 서대석(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의 정년퇴임을 기념해 후학들이 뜻을 모은 것이다. 임재해ㆍ박경신ㆍ박진태ㆍ황루시ㆍ강진옥ㆍ김종철ㆍ정출헌 교수를 비롯해 소장 연구자들, 박사급 신진 연구자들까지 망라했다. 서 교수를 비롯한 지은이들이 저마다 한 명씩, 우리 고전 속에 묻혀 있던 무려 85명의 인물을 새롭게 발굴하거나 재해석해 놓았다. 권선징악, 개과천선, 인과응보, 고진감래 등으로 상징되는 교과서식 상투적인 해석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역력하다. 그 덕분에 우리 주변이나 현대문학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 다양한 욕망과 콤플렉스와 다중성까지 지닌 복합적이고 역동적이며 입체적인 인물들이 즐비하다.
유리, 최치원, 옹녀, 박문수, 이몽룡, 황진이, 춘풍의 처, 장화와 홍련 같은 익숙한 인물들은 몇 안 된다. 석숭, 방학중, 비형, 민옹, 수명장자, 당금애기, 삼족구, 덴동어미 같은 이름들은 난생처음 듣는 듯 생경하다.
당금애기…덴동어미…묻혀있던 고전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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