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사랑도 예술도 자유였던 ‘파리 여성들의 천국’

등록 2008-04-04 23:11수정 2008-04-04 23:21

아방가르드 문학잡지 <리틀 리뷰>의 발행 및 편집인 마거릿 앤더슨과 제인 히프(가운데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가 파리에 도착해 같은 잡지의 해외 편집인인 에즈라 파운드(가운데줄 맨오른쪽) 등과 만나서 사진을 찍었다. 앞줄 왼쪽 카메라를 든 이는 사진작가 만 레이, 그 뒤에 서 있는 이는 그의 모델 키키, 앞줄 맨 오른쪽은 장 콕토, 앞줄 무릎 꿇고 앉은 이는 모더니스트 시인 미나 로이 등이다.
아방가르드 문학잡지 <리틀 리뷰>의 발행 및 편집인 마거릿 앤더슨과 제인 히프(가운데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가 파리에 도착해 같은 잡지의 해외 편집인인 에즈라 파운드(가운데줄 맨오른쪽) 등과 만나서 사진을 찍었다. 앞줄 왼쪽 카메라를 든 이는 사진작가 만 레이, 그 뒤에 서 있는 이는 그의 모델 키키, 앞줄 맨 오른쪽은 장 콕토, 앞줄 무릎 꿇고 앉은 이는 모더니스트 시인 미나 로이 등이다.
〈파리는 여자였다〉
안드레아 와이스 지음·황정연 옮김/에디션더블유·1만4000원

1920~30년대 센 강 좌안에 둥지 튼 28명의 예술가들
‘남성의 애인’ 아닌 ‘여성’으로서 독립·주체적 삶 부각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를 구가한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는 세계의 문화 수도라 할 만했다. 미술 황제 피카소와 마티스, 브라크, 모딜리아니와 그의 연인 잔 에뷔테른, 다다이스트 루이 아라공과 앙드레 브르통, 그리고 트리스탄 차라, 사진가 만 레이와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막스 자코브 등이 수놓은 이 시기의 파리 풍경은 국내에도 번역된 단 프랑크의 소설 <보엠>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세기 초 파리는 또한 세계 모더니즘 문학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T. S. 엘리어트와 에즈라 파운드, e. e. 커밍스, 제임스 조이스, 폴 발레리, 마르셀 프루스트, 장 콕토 등이 세계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이곳에서 주도했는가 하면,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 같은 미국의 젊은 작가들도 조국을 떠나 파리에서 자신의 운명을 시험해 보고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배가 부를 듯한 이 문화적 스타들의 주변에는 또한 매력적인 여성들이 출몰했으니, 파리의 카페를 무대로 한 흥미로운 일화들에서 여성은 흔히 뮤즈나 정부(情婦)로 등장하곤 한다. <돈키호테>의 영역자인 새뮤얼 퍼트넘이 <파리는 우리의 정부였다>(Paris Was Our Mistress)라는 책 제목으로 뜻한 것이 바로 이런 ‘남자들의 이상향’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안드레아 와이스의 <파리는 여자였다>(Paris Was A Woman)는 퍼트넘의 책 제목을 비트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러니까 ‘정부’에서 ‘여자’로의 방점 이동에 이 책의 동기이자 목적이 들어 있다. 보조적이며 기생적인 존재(정부)가 아닌,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존재(여자)로서 여성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벨 에포크의 허스토리(herstory)’라 할 법하다.



〈파리는 여자였다〉
〈파리는 여자였다〉
‘좌안의 초상’(Portraits from the Leftbank)이라는 원저의 부제는 이 책이 파리를 가르는 센 강의 남쪽 좌안을 무대로 활동한 여성들의 이야기임을 말해준다. 문화와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도 좌안은 특히 숱한 예술가와 문인, 학자 및 학생 들의 보금자리로 구실했다. 1920~30년대 이곳에는 프랑스는 물론 영국과 아일랜드, 독일, 그리고 특히 미국의 여성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독특한 공동체를 형성했다. 헤밍웨이를 비롯한 또래 미국 작가들에게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라는 이름을 붙여 준 것으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 그리고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를 최초로 출판한 서적상 겸 출판인 실비아 비치, 화가 마리 로랑생과 사진작가 지젤 프로인트는 이들 가운데 비교적 알려진 이름들이다.

<파리는 여자였다>의 앞머리에는 이들을 포함해 모두 28명에 이르는 ‘등장인물’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출판 및 편집인, 소설가, 시인, 화가, 사진작가, 디자이너, 가수, 기자 등 다채로운 직업이 망라된 이 여성들은, 퍼트넘으로 대표되는 남자들의 오해와는 달리, 지극히 독립적이며 자족적인 동아리를 이루었다. 이들의 독립성과 자족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만연한 동성애적 관계라 할 수 있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유대계 미국 여성인 앨리스 B. 토클라스를 평생의 반려이자 비서 겸 편집자로 삼았다. 거트루드의 출세작은 앨리스의 자서전 형식을 취한 소설 <길 잃은 세대를 위하여>였는데,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또 다른 소설 <넬리와 릴리가 널 사랑하지 않았니>에서 쓰고 있는 대로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정말로 아내 같았다.”

미국 출신 작가로서 유명한 레즈비언 살롱을 주재한 나탈리 클리포드 바니는 고대 그리스의 레즈비언 시인 사포를 동경했으며, 여성 화가인 로메인 브룩스와 평생을 연인 관계로 지냈다. 또 다른 미국 소설가 겸 언론인 주나 반스의 지속적인 연인은 화가 셀마 우드였는데, 책 속의 여러 사진들에서 셀마를 비롯한 많은 여성 동성애자들이 짧게 깎은 머리에 남장을 하고 넥타이를 맨 차림으로 등장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들말고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프랑스의 유명 작가 콜레트와 전 벨뵈프 후작부인, 아방가르드 문학잡지 <리틀 리뷰> 발행인 마거릿 앤더슨과 오페라 가수 조젯 르블랑, <뉴요커> 기고자였던 재닛 플래너와 편집자 솔리타 솔라노 등도 ‘공인된’ 레즈비언 커플이었다. 이들의 관계는 당연히 부부로서의 법적 의무와 권리를 수반하지는 않았지만, 그 때문에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열린 관계’라는 점에서 배타적이거나 착취적인 이성애의 대안으로 여겨졌다.


<율리시스>를 출판한 실비아 비치(뒷줄 오른쪽)가 제임스 조이스(앞줄 왼쪽) 및 동료 서적상 아드리엔 모니에(뒷줄 왼쪽) 등과 소풍을 가서 찍은 사진.(사진 아래)
 전쟁 기간 중 헤밍웨이와 함께 전쟁 특파원 복장으로 카페 되 마고의 단골 좌석에 앉은 재닛 플래너.
<율리시스>를 출판한 실비아 비치(뒷줄 오른쪽)가 제임스 조이스(앞줄 왼쪽) 및 동료 서적상 아드리엔 모니에(뒷줄 왼쪽) 등과 소풍을 가서 찍은 사진.(사진 아래) 전쟁 기간 중 헤밍웨이와 함께 전쟁 특파원 복장으로 카페 되 마고의 단골 좌석에 앉은 재닛 플래너.
그렇다고 해서 ‘좌안의 여성들’을 사포의 후예로만 이해하는 것은 편협한 노릇이다. 이들이 추구한 성적 자유와 일탈 역시 궁극적으로는 예술적 창조와 표현을 위한 바탕으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남성 지배적 문화 풍토에서 이들은 여성 예술가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몸부림쳤다. 거트루드 스타인의 살롱, <율리시스>를 처음으로 연재한 <리틀 리뷰>와 책을 출판한 서점 겸 출판사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그리고 재닛 플래너가 40년 동안 ‘파리에서 온 편지’를 연재한 미국 잡지 <뉴요커>는 이들의 예술혼과 문화적 역량을 발휘할 무대가 되었다. 무려 80~90회에 걸쳐 피카소의 초상화 모델이 되어 주었으며 무명의 피카소를 ‘발견’했던 스타인, 조이스의 천재를 숭배해서 <율리시스>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실비아 비치, 그리고 행의 파괴와 혁신적인 띄어쓰기 기법으로 e. e. 커밍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나 자신은 잊혀지고 만 모더니스트 시인 미나 로이에게서 보듯 이들은 성이 다른 예술가들에게도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1940년 독일군의 파리 점령으로 벨 에포크는 끝이 났다. 유대계를 비롯한 상당수의 좌안 거주자들이 파리를 떠났다. 좋았던 시절에 실비아 비치를 비롯한 여성 예술가들의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했던 부유한 상속녀 브라이어(위니프레드 엘러만)는 100여 명의 독일계 유대인과 급진주의자들이 스위스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브라이어의 지원 대상에는 미학자 베냐민 역시 들어 있었는데, 알려져 있다시피 베냐민은 마지막 순간 스페인 국경에서 검문에 걸리자 극약을 삼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쟁이 끝나고 1년 뒤에 거트루드 스타인이 암으로 세상을 뜬 것은 ‘좌안 여성들의 시대’가 끝났음을 상징하는 것과 같았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에디션더블유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