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맹자의 보수’로 되돌아본 ‘오늘의 보수’

등록 2008-05-23 21:21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자신과 인간의 가치 중시하고
개인 욕망보다 공동체 인륜 강조
“패도에 빠진 왕 갈아치워야” 역설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이혜경 지음/그린비·1만4900원

그린비 출판사가 펴내는 ‘리라이팅 클래식’(고전 다시 쓰기)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은 2300년 전에 살았던 맹자(기원전 379~289)를 우리 시대로 끌어와 사유의 생생한 숨결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중국철학 전공자인 지은이 이혜경씨는 이 고색창연한 인물과 친구가 되어보자고 권유한다. 맹자는 이 책에서 아득한 세월의 더께를 훌훌 털어버리고 시원스런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걸어 나온다. 그는 친구가 된 독자와 함께 유쾌하게 걸으면서, 그 독자에게 자신의 원대한 사상을 막힘없이 풀어놓는다.

지은이는 맹자의 성격적 특성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맹자는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그때의 자존심이 나르시시즘에 갇힌 자기애가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맹자만큼 자기 자신을 숭고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자기 마음의 위대함을 확신한 맹자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가치를 축소시키고 스스로를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나섰다.”

맹자가 활동했던 시대는 전국시대(기원전 403~221), 곧 전국 7웅이 중원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전쟁의 시대였다. 나라마다 부국강병을 목표로 삼아 무한경쟁을 벌였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등장해 정치·외교·전쟁의 전문가를 자처하며 자신의 재능을 시험하고 야심을 실현하려 분투했다. 백가쟁명의 시대였다. 이 난세의 한가운데서 맹자도 자신의 사상적 청사진을 제출했다. 쉰이 넘어 20년 동안 천하를 편력하며 제후들 앞에서 유세했다. 그러나 그의 아이디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일흔이 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과 토론하며 저술에 매진했다. <맹자>는 말하자면, 그 실패의 산물이다.

지은이는 맹자가 실패한 것이 시대의 흐름을 거슬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모두들 이익을 따지고 욕망을 채우려고 몸부림치던 시대에 맹자는 ‘인’과 ‘의’를 이야기했던 것이다. <맹자> 첫머리에 나오는 ‘양혜왕’ 편의 대화가 단적인 사례가 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어떻게 내 나라에 이익을 줄 것인가’라고 묻는 혜왕의 질문에 맹자는 이렇게 답한다. “왕은 어째서 이익에 대해서만 말씀하십니까? 진정 중요한 것은 ‘인’과 ‘의’입니다. (…) 위아래가 다투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하면 나라는 위태로워집니다.”


‘맹자의 보수’로 되돌아본 ‘오늘의 보수’
‘맹자의 보수’로 되돌아본 ‘오늘의 보수’
전쟁과 탐욕의 시대에 인과 의를 설파한 맹자는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명백한 보수주의자였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맹자는 공동체를 가족관계의 확대된 형태로 보았고 그 공동체의 인륜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 인륜의 출발점이 개인의 마음이었다는 것이 맹자 사상의 특징이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한다고 보았던 맹자는 인간의 마음이 본래 선하다는 ‘성선설’을 주창했다. 그 선한 본성은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고 돌봄과 기름을 통해 완성된다. 선한 본성은 막 솟아난 싹과 같은 것이어서 지극정성으로 키워야만 인의예지라는 열매를 맺는다. 이것이 맹자의 윤리철학이라면, 이 윤리철학에 입각해 세운 정치철학이 ‘왕도정치’다. 왕이 선한 본성에 따라 배려와 사랑으로 세상을 다스림으로써 공동체에 인륜과 평화가 실현된다는 것이 왕도정치다.

맹자는 사상투쟁을 불사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부국강병을 지상목표로 삼은 현실을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현실을 부정하는 다른 사상들과도 맹렬하게 싸웠다. 이를테면 양주와 묵자가 맹자의 사상적 경쟁자였다. “이들과 대결하는 맹자는 흡사 검투사처럼 거칠고 공격적이었다.” 극단적 개인주의자였던 양주는 “내 털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 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런 양주를 맹자는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를 무시한다고 공박했다. 또 평등주의를 주창했던 묵자에 대해서는 “아버지를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맹자는 틀림없는 보수주의자였다. 그러나 동시에 맹자는 바로 ‘인’과 ‘의’의 정신에 입각해 ‘혁명’을 정당화한 사람이기도 했다. 군주가 왕도를 저버리고 패도에 빠질 때 그 왕을 갈아치울 수 있다고 서슴없이 말했던 것이다. “신하가 임금을 시해해도 되는 것입니까?” 제선왕이 묻자 맹자가 대답했다. “남을 해치고 잔인하게 구는 자는 일개 사내일 뿐입니다. 저는 일개 사내인 걸(하의 마지막 왕)과 주(은의 마지막 왕)를 처형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왕 앞에서 혁명을 말하기를 겁내지 않았던 맹자는 ‘호연지기’의 적실한 사례라 할 만하다. 자긍심과 자존감에 찬 맹자의 모습이야말로 ‘세상의 중심에서 주인으로 사는 삶’의 모범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내면의 가치를 믿으며 외적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당당함과 명랑함, 그것은 맹자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유학자의 삶이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