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의 연대’가 우리를 구원할 거야
상실을 애도하는 ‘조력자들의 힘’
자신의 고통 경험 이웃까지 도와
고립서 소통으로 가는 과정 그려
자신의 고통 경험 이웃까지 도와
고립서 소통으로 가는 과정 그려
〈풍선을 샀어〉
조경란 지음/문학과지성사·1만원 조경란(39)씨의 새 소설집 <풍선을 샀어>는 고통과 고립을 떨치고 자존과 소통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기록이다. 책에 수록된 여덟 단편의 주인공들은 부모의 죽음이나 배우자의 실종, 또는 자아 정체성의 혼란과 같은 사태를 맞이해 방황하고 고통 받지만, 조력자들을 만나면서 새롭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삶의 출구를 열어 나가게 된다. 어느덧 세는 나이로 마흔에 이른 작가의 여유와 따뜻함이 느껴진다. 소설집에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이 빈발한다. 자살한 아버지들(<풍선을 샀어>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이 있는가 하면, 두 살짜리 아이를 남겨 놓고 한꺼번에 죽은 부모도 있다(<달걀>). 그렇게 남겨진 아이는 할머니나 이모, 또는 고모들 같은 친척들과 함께 생활하는데,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그 친척들이 죽음을 맞는다. 두 겹의 상실이 주인공을 공습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죽음이 갑작스러운 만큼 일방적인 재난의 형태로 닥쳐왔다면, 친척의 죽음은 시간적 여유와 정신적 성숙을 수반한 채 주인공을 찾아온다. 가령, 아버지의 죽음 이후 두 고모와 함께 살고 있던 <달팽이에게>의 주인공은 그 중 한 사람인 하지 고모의 죽음이라는 또 한번의 상실을 경험하게 되는데, 하지 고모의 동생인 요지 고모의 정성스러운 수발과 달팽이들의 수정이 포개지면서 하지 고모의 죽음은 단순한 상실이 아닌 ‘선물’로 몸을 바꾼다.
“안녕히 가시오, 성! 나는 먼 데서 들려오는 요지 고모의 목소리를 들었다. 달팽이들은 꼼짝도 않은 채로 몸을 밀착시키고 있었다. (…) 그것은 내가 처음 본 평화로운 죽음이었고 또한 하지 고모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다.”(79~80쪽)
죽음과 상실이 평화와 선물로 몸을 바꾸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고통과 두려움이라는 터널을 통과해야만 그런 변모는 가능해진다. 고통과 두려움이 단지 삶으로부터 수동적으로 떠안은 짐이 아니라, 생의 내용을 채워 넣고 아름다운 무늬를 수놓기 위한 재료이자 도구가 된다는 적극적 인식은 소설집 곳곳에서 나타난다. “두려움이 다 사라지고 나면 그건 진짜 너의 삶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풍선을 샀어>)라거나, “고흐의 불안과 고통 없이 그 그림이 진정 아름다울 수는 없을 거”(<달팽이에게>)와 같은 구절들을 보라.
고통의 존재론적 승화에 입회하는 조력자들 또한 제 나름의 어려움과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의 고통의 힘으로써 고통 받는 이웃을 도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흔에 대한 추측>의 주인공은 2년 전 토끼를 치어 죽인 일을 마음에서 떨쳐 버리지 못한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누구한테나 토끼 같은 이야기가 있”(240쪽)지 않겠는가. 그가 에니어그램 도형을 보면서 “그러니까 우린 모두 한 개의 원 속에 포함되어 있는 거로군”(240쪽)이라고 생각할 때, 그것은 곧 고통의 연대에 대한 깨달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과 연대의 부호로서의 원(圓) 이미지와 함께, 주인공들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보이는 관심은 이 소설집의 또 다른 특징이다. “중요한 일을 겪고 났을 때 사람들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밤이 깊었네>) 작가에게 글쓰기가 자기를 객관화시킴으로써 고통을 보람으로 승화시키는 수단이 됨을 알 수 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조경란 지음/문학과지성사·1만원 조경란(39)씨의 새 소설집 <풍선을 샀어>는 고통과 고립을 떨치고 자존과 소통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기록이다. 책에 수록된 여덟 단편의 주인공들은 부모의 죽음이나 배우자의 실종, 또는 자아 정체성의 혼란과 같은 사태를 맞이해 방황하고 고통 받지만, 조력자들을 만나면서 새롭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삶의 출구를 열어 나가게 된다. 어느덧 세는 나이로 마흔에 이른 작가의 여유와 따뜻함이 느껴진다. 소설집에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이 빈발한다. 자살한 아버지들(<풍선을 샀어>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이 있는가 하면, 두 살짜리 아이를 남겨 놓고 한꺼번에 죽은 부모도 있다(<달걀>). 그렇게 남겨진 아이는 할머니나 이모, 또는 고모들 같은 친척들과 함께 생활하는데,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그 친척들이 죽음을 맞는다. 두 겹의 상실이 주인공을 공습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죽음이 갑작스러운 만큼 일방적인 재난의 형태로 닥쳐왔다면, 친척의 죽음은 시간적 여유와 정신적 성숙을 수반한 채 주인공을 찾아온다. 가령, 아버지의 죽음 이후 두 고모와 함께 살고 있던 <달팽이에게>의 주인공은 그 중 한 사람인 하지 고모의 죽음이라는 또 한번의 상실을 경험하게 되는데, 하지 고모의 동생인 요지 고모의 정성스러운 수발과 달팽이들의 수정이 포개지면서 하지 고모의 죽음은 단순한 상실이 아닌 ‘선물’로 몸을 바꾼다.

〈풍선을 샀어〉
생명과 연대의 부호로서의 원(圓) 이미지와 함께, 주인공들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보이는 관심은 이 소설집의 또 다른 특징이다. “중요한 일을 겪고 났을 때 사람들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밤이 깊었네>) 작가에게 글쓰기가 자기를 객관화시킴으로써 고통을 보람으로 승화시키는 수단이 됨을 알 수 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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