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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노 전 대통령 서거는 ‘현대판 기묘사화’

등록 2009-05-30 09:11

조선 중종때 조광조 개혁정치
훈구파 기득권 상실 위기 몰리자
혹세무민으로 사림세력에 칼날
수백년전 지식인 눈으로 오늘 비판
조선의 논객들 대한민국을 말하다
서디창 우리역사모임 지음/왕의서재·1만3000원

사회자 허난설헌(1563~1589)이 입을 열었다. “요즘 대한민국 정치를 보면서 여러 대감들의 마음이 무겁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산성 없는 당쟁의 역사를 지켜보았거나 그 중심에 계셨던 대감님들이 볼 때 조선보다 나아진 게 없어 보일 테니 말입니다.”

<홍길동전>을 쓴 그의 동생 허균(1569~1618)이 먼저 나섰다. “붕당정치에서 정당정치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하는 행태는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소. 상대 당을 넘어뜨리기 위해 한바탕 피바람을 불렀던 게 붕당이었다면, 상대 당의 지지율을 낮추기 위해 인신공격이나 약점 캐내기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요즘 정당이외다.”

사림의 기수 정암 조광조(1482~1519). 중종반정 공신들인 훈구파를 “자신들의 세력이 아니면 조정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고, 자신들에게 거슬리면 가차없이 목숨을 빼앗는 썩은 세력”이라 질타한 뒤 예의 꼬장꼬장한 언변으로 대한민국 훈구파를 거칠게 몰아붙였다. “대한민국은 건국 때부터 그런 인간들 손에 넘어가 버렸소. 건국 때 관리들은 태반이 친일파들이었소. 일제 때 친일했던 자들은 조선 말기 관리나 행세깨나 하는 집안의 사람들이었는데, 당시 이런 자리를 유지하자면 백성의 혈을 빨지 않고는 가능치 않았소. 또한 뜻 있고 의기 있는 이들은 일제에 항거해 자결하거나 독립운동을 했는데, 당시 국내에서 벼슬길에 올랐다 함은 결국 제 일신과 가문을 지키기 위해 또 다시 이 나라 백성의 등을 친 존재란 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오. 해방이 되면서 이들을 청산해야만 했는데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소이다. (점령국) 미국은 자국의 영향력이 행사될 수 있는 인물을 지도자로 앉히는 한편 빠른 통제를 위해 일제 때 관리들을 그대로 두었던 것이오. 그런 자들이 공무를 집행하고, 경제를 좌지우지 하면서 일본 잔재를 청산하려던 뜻 있는 세력은 발을 붙일 수 없게 됐소.”

500년 전에도 이런 입바른 소리는 결국 화를 불렀다. 공신 자격을 박탈하고 그들의 노비와 토지를 몰수해버린 조광조의 개혁으로 기득권 상실 위기에 직면한 훈구파 특권층이 반격에 나섰다. 그들은 ‘주초위왕’ 따위의 혹세무민으로 개혁에 싫증을 내기 시작한 중종을 꼬드겨 조광조와 사림세력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때를 회상했을까. 조광조는 실로 예지가 번뜩이는 발언을 이어갔다. “나는 한 지도자에게서 개혁의 빛을 보았소. 그는 과거 정권과의 묶임을 끊고 백성의 지지를 받고 일어섰더이다. 그는 잘못된 나라의 체계를 바로잡으려 했으며,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삼권분립을 명쾌히 하려 했소. 특히 과거 권력의 앞잡이라 불리던 집단과 공개토론까지 했는데, 나는 실상 그 모습을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참지 못했소이다. 과거 지도자 앞에서는 낮은 포복을 일삼던 자들이 이 뒷배 없는 지도자를 만만히 보는 모습에 그들의 안하무인격인 속물근성이 얼마나 팽배해 있었던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오.”

작가그룹 서울디지털창작집단(서디창)의 우리역사모임이 주최한 이 토론회는 지난 23일 새벽 경남 진영읍 봉하마을 뒷산 부엉이바위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한참 전에 이뤄졌다.

내친김에 조광조는 더 나아갔다. “뿐만 아니라 (그 지도자는) 반민족행위자 규명법으로 잘못 끼운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자 노력했소. 세금 감면 등 재정적 특혜를 누리는 사학법과 과도한 양극화를 만들어내는 부동산에도 칼을 들이밀었소. 그러나 결과는 어떻소이까? 경제를 잡지 못하고 말썽만 만드는 무능한 지도자로 낙인이 찍혀 버렸소. 그 첫째 이유는 과거 정권과 단단히 결탁해 이득을 챙겨오던 언론사들이 그 단점만을 부각시켜 백성을 호도했기 때문이오. 또한 그들과 결탁한 많은 세력들이 그 공격에 합세했기 때문이오. 결탁한 자라 함은 과거 정권에서 이득을 취하던 사람들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소이다.” 조광조는 오늘의 훈구세력과, 그가 그 앞잡이라고 한 검찰과 보수언론이 결국 그 지도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현대판 기묘사화가 미구에 일어나리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의 불기피성을 논하던, 이 토론회에서 신숙주(1417~75)와 더불어 때로 뉴라이트 계열의 사고를 대변하는 듯했던 조광조는 역시 도학적 사림의 거두답게 정치적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바르지 못한 자들을 추상같이 내리쳤다.

하지만 서얼 출신으로 신분차별의 서러움을 뼈에 사무치게 겪은 실학자 초정 박제가(1750~1805)는 “알맹이는 없고 먼지만 풀풀 날리는 껍데기들끼리 조정을 이리 헤집고 저리 뒤집던 그 시절과 (지금이) 별반 다를 바 없다”며 맞장구치면서도 조광조의 개혁이 “훈구파를 제압하기 위한 정치성이 강한 개혁이었지, 백성들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서 벌인 일은 아니었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유권자들을 향한 진주농민항쟁(진주민란) ‘주모자’ 유계춘(?~1862)의 얘기가 아프다. “마지막 당부는 투표를 하지 않고 욕하지 말란 것이오. 자신이 살아갈 세상에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잘못된 것만을 책하는 것은 바로 ‘누워 침 뱉기’라는 것을 알아야 하오. 뽑을 사람이 없어 뽑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 인해 뽑힌 자들이 나라를 재단하오. 그 재단하는 데 있어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단 말이오. 정치인이 정치 9단이 되길 바라지 말고, 국민 모두가 정치 9단이 돼야 하오. 그들의 행보는 우리의 삶과 직결돼 있음을 잊지 마시오. 그들이 세상을 망쳤다 탓하지 마오. 그런 자들을 뽑은 자신을 탓하시오.”

<조선의 논객들 대한민국을 말하다>라는 책으로 묶인 이 토론회에는 이들 외에 연암 박지원(1737~1805), 기축옥사 때 희생당한 공화주의자 정여립(1546~89), 서민 구제에 앞장선 토정 이지함(1517~78), <택리지> 저자 이중환(1690~1756), 중인 출신의 개화파 선구자 오경석(1831~79) 등 모두 11명의 논객들이 등장한다. 조선 500년 역사를 통틀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특출한 재주와 개성을 지녔던 이들이 한반도 대운하, 자유무역협정, 교육, 양극화, 통일, 사대주의, 한류, 성 문제 등 이 시대의 주요 현안들에 관해 쏟아놓는 거침없는 언설들. 이들 11명에 대한 책을 한 권 이상씩 써낸 연구자들이 글로 정리했다. 30대의 전업작가들 6명이 그들인데, 그들 중 5명이 여성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젊은 작가들이 역사적 인물들 속으로 들어가서 본 세상사이자 바로 그들 자신의 고민이고 토론이며, 세상을 보는 시각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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