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승·카사노바…그의 두 얼굴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그는 평생을 육체의 쾌락과 숭고한 정신 사이에서 고통받았다. 예술가였지만 예술을 미워했고, 책을 90권이나 썼지만 ‘말’을 믿지 않았다. 결혼했지만 결혼 제도를 부정했고,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아내와 싸웠다. 그는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는 톨스토이가 마흔아홉에 탈고한 <안나 카레니나>를 돋보기 삼아 그의 삶과 정신세계를 톺아본 책이다. 지은이가 이 소설을 선택한 까닭은 “사랑, 결혼, 종교, 윤리, 죽음, 인생에 관한 톨스토이의 생각을 거의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젊고 아름다운 귀족 부인이 멋진 총각 장교와 애정행각을 벌이다 질투와 의심과 번민을 못 이겨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진다는 줄거리다. 톨스토이는 왜 생기와 매력을 내뿜던 안나를 그토록 가혹하게 죽였을까?
제정 러시아의 귀족 집안 출신인 톨스토이는 젊어서부터 지독한 여성 편력을 즐겼다. 나이 40대에 이미 “인생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다.” 그러면서도 항상 자의식과 도덕감정에 시달렸다. “그의 일생은 육체와의 길고도 참혹한 전쟁”이었다. 톨스토이는 나이 쉰줄에 극적인 ‘회심’을 결심한다. 젊은 시절의 주색잡기뿐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반성’했다. <참회록>(1882)은 그 공증이었다. 이후 그는 시골생활, 채식, 겸손, 정직, 금욕, 이타적 사랑의 전도사가 된다. 지은이는 톨스토이를 알고 난 뒤라면 “누구라도 그의 위대한 고통에 경의를 표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한다. 석영중 지음/예담·1만3000원.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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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희망의 풍차를 돌려라
〈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
아프리카 남동쪽 말라위에 살던 열네 살 소년 윌리엄 캄쾀바는 등록금 80달러를 구하지 못해서 중등학교에 가지 못했다. 나라 전체에 대기근이 닥쳤기 때문이다. 윌리엄은 학교에 가는 대신 국제단체의 지원으로 세워진 조그만 동네 도서관에 갔다. 그곳에서 인생을 바꿀 책 한 권과 마주쳤다. <에너지 이용>이라는 미국 교과서였다. 풍차로 전기를 발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읽고 직접 만들자고 마음먹었다. 윌리엄네 동네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전기가 있으면 물 펌프를 돌릴 수 있어, 1년에 추수를 두 번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더는 굶주리지 않아도 된다.
동네 사람들은 윌리엄을 미쳤다고 했다. 윌리엄은 쓰레기장에 버려진 자동차 부속품, 맥주병 뚜껑 따위로 재료를 긁어모았다. 쓰레기장에서 구할 수 없는 재료는 삯일을 해서 벌어서 샀다. 마침내 윌리엄이 만든 풍차에 연결한 전구에서 빛이 나는 순간, 몰려든 동네 사람들은 윌리엄을 미쳤다고 놀리지 않았다. 소문은 나라 안과 밖으로 널리 퍼졌다. “난 해 보고 만들었어요”라는 윌리엄의 말에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을 비롯해 유명 인사들이 찬사를 보냈다. 22살 윌리엄은 이제 고등학교 과정을 밟고 있다. 대학에 갈 예정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아프리카 전역의 시골 마을에 물과 전기를 공급하는 일을 할 꿈이 있다. 윌리엄이 만든 풍차는 희망이었다. 윌리엄 캄쾀바·브라이언 밀러 지음·김흥숙 옮김/서해문집·9800원.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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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고 할 땐 각오했겠지?
〈사과는 잘해요〉
<사과는 잘해요>는 이기호(37)씨의 첫 장편소설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올 4월까지 인터넷 포털 다음에 연재했던 것을 대폭 개작했다. 주인공은 ‘시설’에서 살다가 사회로 나온 두 청년 시봉과 진만. 본인들의 의사와는 달리 ‘내부 고발자’가 되어 시설의 원장과 사회복지사들을 감옥으로 보내기까지 한 인물들이지만, 사실 두 사람은 제 앞가림도 못하는 지체아들이다. 시설에서 복지사들의 폭력에 시달리며 온갖 종류의 사과를 했던 그들은 사회에 나와서도 자신들의 장기를 살려 ‘대신 사과하기’로 생계 방편을 삼고자 한다.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 가출했던 어린 소년을 대신해 사과하는 것을 필두로 아파트 상가의 이웃에게 사과하고자 하는 정육점 주인, 소아마비로 태어난 아이와 아내를 버리고 달아났던 남자 등이 손님으로 나타난다. 전후 맥락에 무지한가 하면 뜻밖에도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보기도 하는 두 주인공의 좌충우돌 사과 소동은 실소를 자아내는 한편 아릿한 슬픔을 선사하기도 한다. 사과 놀이의 와중에 두 주인공이 시봉의 여동생에게 기생하던 착취자 ‘뿔테 안경’을 자살로 위장해 살해하고, 출옥한 사회복지사들이 복수를 위해 두 주인공을 찾아오는 등 후반부에서 소설은 크게 요동친다. 진만이 사회복지사들에게 인질로 잡힌 시봉의 안위를 나 몰라라 한 채 혼자만 살 궁리를 함으로써 그에게는 정말로 사과해야 할 일이 생긴다.
일종의 ‘순진한 화자’의 시점을 택해, 올바르고 떳떳하게만 보이는 우리 일상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죄악과 죄의식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해학적인 필치로 드러낸 소설이다. /현대문학·1만원. 최재봉 문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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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독히도 울퉁불퉁하다
〈공간의 힘〉
‘세계는 평평하다’라고 말하는 세계화 전도사 토머스 프리드먼의 책이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프리드먼이 알고 있는 세계는 그 자신이 속한 ‘중심부’만일 가능성이 높다. <분노의 지리학>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하름 데 블레이 미시간주립대 교수의 <공간의 힘>은 그 사실을 재확인시킨다. 세계는 주변부로 갈수록 울퉁불퉁해진다. 그 경계의 벽들은 오히려 점점 더 높아가고 주변부의 요철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도 중심부는 분명히 평평해졌고 중심부와 연결된 주변부 주요 통로들 역시 그러하나 대다수 주변인들에게 중심부는 여전히 금단의 영역이라고 했다. “불평등은 지독히 광범위할 뿐 아니라 (오히려) 사뭇 ‘확대’되고 있다.” 지리·문화적 불평등, 불공평이 갈라놓은 장벽 때문에 그 장벽 이쪽에서 태어나느냐 저쪽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개인·집단간 삶의 질이 천차만별로 나뉜다. 마치 높낮이 차가 클수록 커지는 수압처럼 그들간의 불평등이 클수록 공간의 힘이 갖는 결정력도 커진다. 세계화에 따라 예전보다 공간 이동이 훨씬 자유로워지고 공간의 격차는 줄어들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건 착각이다. 지은이는 세계를 소득 수준, 종교, 언어, 인구, 질병, 보건상태, 자연재해 등의 카테고리로 나눠 마치 기자가 현장 취재하듯 확인한 최신정보들을 들이대며 자신의 논지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한다. 그가 그린 지도에서 한국은 분명 중심부에 속해 있다. 하지만 남북을 가른 비무장지대(DMZ)는 오늘날 “세계 중심부/주변부 분리의 상징이 되었다”고 그는 써 놓았다. 황근하 옮김/천지인·2만2000원.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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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원과 우에노 공원 ‘닮은꼴 비밀’
〈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
우에노 공원은 일본 도쿄의 도심 명소다. 사쿠라(벚나무) 숲 속에 국공립 박물관들과 동물원이 들어찬 공원 얼개가 공교롭게도 옛 창경원을 빼닮았다. 20세기 초 창경궁을 헐어 만든 창경원과 우에노 공원 사이에 역사적 연관성이 있는 건 아닐까. 의문을 품고 사료를 뒤졌던 우동선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는 놀라운 공통점을 찾아낸다. 첫째, 두 유원지는 본디 권력의 성역이었다. 우에노는 도쿠가와 막부의 장군들 무덤과 사당이 있던 곳이었다. 둘째, 성역을 뭉개고 박물관 등의 근대 관람시설이 무더기 이식됐다는 것. 셋째, 두 곳에 모두 근대 박물관 건립을 발의한 사람은 일본 정계의 실세이자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였다는 것. 창경궁 안에 박물관, 동식물원을 지으라고 순종에게 제안했던 이토의 머릿속엔 과거 성역의 기억을 완전히 허물어뜨린 우에노 공원 만들기의 기억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를 거든 당시 일본인 사무관은 ‘창경궁은 유리 그릇 안의 물체처럼 누구에게라도 보이는 것이 좋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진 교수 등 건축사학자 8명이 지은 <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은 이처럼 조선 궁궐의 수난 역사를 넓고 깊은 건축사의 맥락으로 뜯어다본다. 세우고 헐고 훼손하는 근대 건축 현상 이면의 의도와 배경 등이 탐구의 과녁이다. 경복궁, 덕수궁, 경희궁 등의 궁궐 전각들이 박람회, 도시계획, 경관 미화 등을 이유로 무수히 헐리거나 요정, 절, 사택 등으로 가게 된 숱한 곡절과 아픈 이산의 내막들을 8편의 글들은 낱낱이 확인해 주고 있다. 우동선·박성진 외 6명 지음/효형출판·1만8000원.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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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에 대한 신학자의 논박
〈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
<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은 신과 종교에 대한 바른 이해를 권하는 책이다. 현실적으론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대한 한 신학자의 응답’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의 영향력 약화가 목표다. <만들어진 신>(원제 ‘신이라는 망상’)은 ‘전지전능한 유일신’의 존재 불가능성을 논증하며, 기독교 근본주의의 해악을 집중 비판한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인 지은이는 ‘현상적 종교 행태’에 대한 비판 및 생명현상에 대한 과학적 설명으로서 진화론을 인정한다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과학과 종교는 진리를 향한 인간 정신의 두 갈래 여정”이라는 것이다. 하여 ‘(극단적) 종교는 전쟁을 부추긴다’는 도킨스의 주장을, 북아일랜드(가톨릭)와 영국(프로테스탄트)의 분쟁을 예로 들며 “(분쟁·전쟁의) 동기는 종교가 아닌 경제적 탐욕”이라고 반박한다. 종교 갈등의 사회·경제적 맥락을 봐야 한다는 지은이의 지적은 논의 지평을 넓히므로 바람직하다. 지은이는 도킨스의 ‘선동적 수사법’을 문제삼는데, 반(反)종교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신>을 쓴 도킨스가 아파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둘이 결정적으로 갈라서는 대목은 ‘신의 존재’ 여부다. 도킨스는 ‘인간은 신이 없어도 충분히 도덕적이고 열정적일 수 있다’며 ‘신이 없다고 믿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지은이는 “여전히 신은 과학에 의해 증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인식론적 결단’을 거론했다. 깊은 계곡 사이로 세찬 물살의 큰 강이 흐른다. 다리를 놓을 수 있을까. 김기석 지음/동연·1만3000원.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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