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창비) 낸 `운동권 시인’ 송경동 인터뷰.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송경동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용산현장·대추리 빈집·경찰서…
양심 두드려 깨우는 길바닥의 외침
용산현장·대추리 빈집·경찰서…
양심 두드려 깨우는 길바닥의 외침
송경동(43) 시인은 문단보다 운동판에서 더 유명하다. 그는 우리 사회의 힘없고 억울한 이들이 벌이는 힘겨운 생존 투쟁의 현장에 출근 도장을 찍듯 입회해 왔다. 그의 두 번째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창비)은 그런 투쟁의 한복판에서 빚어졌다.
“용산4가 철거민 참사 현장/ 점거해 들어온 빈집 구석에서 시를 쓴다/ 생각해보니 작년엔 가리봉동 기륭전자 앞/ 노상 컨테이너에서 무단으로 살았다/ 구로역 CC카메라탑을 점거하고/ 광장에서 불법 텐트 생활을 하기도 했다/ 국회의사당을 두 번이나 점거해/ 퇴거 불응으로 끌려나오기도 했다/ 전엔 대추리 빈집을 털어 살기도 했지”(<무허가> 부분)
이렇듯 법과 체제의 ‘허가’ 너머를 생활과 시작(詩作)의 무대로 삼다 보니 그에게는 경찰서를 들락거릴 일이 잦았다. 시집 맨 앞에 실린 <혜화경찰서에서>는 경찰서에 불려간 시인이 조사를 받는 이야기다. 경찰은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 온 그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들이밀며 “알아서 불어라” 한다.
“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혜화경찰서에서> 부분)
경찰의 겁박에 엉뚱한 공상으로 대응하는 시인의 어깃장이 통쾌하다. 그에게는 도대체가 일년치 통화기록이니 몇년치 전자우편 내역 정도를 가지고 한 사람을 규정하려는 시도부터가 마뜩찮다. 그는 적어도 수백만 년에서 수억 년에 걸친 생명과 사랑의 연대기에 뿌리를 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 과거를 캐려면/ 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사피엔스의/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 저 바닷가 퇴적층 몇천 미터는 채증해놓고 얘기해야지/ 저 새들의 울음/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놓고 얘기해야지/ 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혜화경찰서에서> 부분)
그런가 하면 시집의 표제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에서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그는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답한다.
송경동 시의 본적지가 사막의 모래산맥과 새들의 울음과 바람결이라면, 무너진 담벼락과 걷어차인 좌판은 그 현주소라 할 수 있다. “길바닥의 시”(<가두의 시>)를 지향하며 ‘서정에도 계급성이 있다’(<서정에도 계급성이 있다>)고 믿는 이 노동자 출신 시인이 문단의 주류 시에 회의적·비판적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인지도 모르겠다. 붕어빵 노점을 하다가 용역깡패들에게 쫓겨난 뒤 길거리 나무에 목을 매 숨진 ‘붕어빵 아저씨’의 영전에 바친 시는 미학에 치우쳐 현실을 외면하거나 은폐하는 기존의 시들에 대한 그의 비판적 태도를 잘 보여준다.
“당신의 죽음 앞에서/ 어떤 아름다운 시로 이 세상을 노래해줄까/ 어떤 그럴듯한 비유와 분석으로/ 이 세상의 구체적인 불의를/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구조적으로 덮어줄까”(<비시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부분) 시집에는 추모시가 몇 편 더 들어 있다. 건설일용노동자 하중근(<안녕>), 멕시코 칸쿤 세계화 반대 시위에서 자결한 농민 이경해(<멕시코, 칸쿤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해 분신한 택시 운전사 허세욱(<별나라로 가신 택시운전사께>) 등 그에게는 시로써 기억해야 할 죽음들이 줄을 이었다. 그중에서도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노래한 <이 냉동고를 열어라>는 많은 이들의 얼어붙은 양심을 두드려 깨운 바 있다. “거기 너와 내가 갇혀 있다/ 너와 나의 사랑이 갇혀 있다/ 제발 이 냉동고를 열어라/ 우리의 참담한 오늘을/ 우리의 꽉 막힌 내일을/ 얼어붙은 이 시대를/ 열어라 이 냉동고를”(<이 냉동고를 열어라> 부분) 지난 한해를 거의 용산에서 보냈던 그는 9일 치러지는 장례식 노제에서도 조시를 낭독할 예정이다. 그에게 ‘용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당신의 죽음 앞에서/ 어떤 아름다운 시로 이 세상을 노래해줄까/ 어떤 그럴듯한 비유와 분석으로/ 이 세상의 구체적인 불의를/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구조적으로 덮어줄까”(<비시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부분) 시집에는 추모시가 몇 편 더 들어 있다. 건설일용노동자 하중근(<안녕>), 멕시코 칸쿤 세계화 반대 시위에서 자결한 농민 이경해(<멕시코, 칸쿤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해 분신한 택시 운전사 허세욱(<별나라로 가신 택시운전사께>) 등 그에게는 시로써 기억해야 할 죽음들이 줄을 이었다. 그중에서도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노래한 <이 냉동고를 열어라>는 많은 이들의 얼어붙은 양심을 두드려 깨운 바 있다. “거기 너와 내가 갇혀 있다/ 너와 나의 사랑이 갇혀 있다/ 제발 이 냉동고를 열어라/ 우리의 참담한 오늘을/ 우리의 꽉 막힌 내일을/ 얼어붙은 이 시대를/ 열어라 이 냉동고를”(<이 냉동고를 열어라> 부분) 지난 한해를 거의 용산에서 보냈던 그는 9일 치러지는 장례식 노제에서도 조시를 낭독할 예정이다. 그에게 ‘용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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