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깨어 있네〉
베스트셀러 읽기 / 〈희망은 깨어 있네〉
이해인 지음/마음산책·9500원 이해인 수녀의 시집 <희망은 깨어 있네>는 올 1월15일 출간 직후 시 부문 베스트셀러 정상에 오른 뒤 1위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3만5000부 정도가 팔렸다. 류시화가 엮은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과 이병률의 <찬란>, 최승자의 <쓸쓸해서 머나먼> 등이 뒤를 잇고 있다. <희망은 깨어 있네>는 이해인 수녀가 직장암 발병 사실을 안 2008년 여름부터 쓴 시 100편을 묶은 시집이다. 잡지 등 매체에 따로 발표하지는 않고 일기 쓰듯 써서 보관했다가 시집으로 엮은 것이다. 병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 쓴 것들이기 때문에 시에는 삶과 죽음, 고통과 행복에 관한 사유가 진득하니 녹아 있다.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어떤 결심> 부분)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희망이라고/ 내게 다시 말해주는/ 나의 작은 희망인 당신/ 고맙습니다”(<희망은 깨어 있네> 부분)
심각한 질병을 얻은 뒤에 비로소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눈뜨게 된다는 것은 안타까운 진실이다. 평상심을 유지하는 가운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질병과 사고 같은 시련을 거치고서야 가까스로 얻어지는 것이 행복과 희망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덮친 암이라는 파도를 타고 다녀온 ‘고통의 학교’에서 나는 새롭게 수련을 받고 나온 학생”(‘책머리에’)이라는 지은이의 말은 시련이 행복으로 이어지는 역설적 맥락을 가리키고 있다. “병을 확인하고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써서는 띄엄띄엄 보내신 걸 정리해 보니 시집 한 권 분량이 되었어요. 몸이 편찮으시고 마음도 약해지셨을 때, 아마도 유고 시집이 될 거라는 각오로 쓰신 작품들 같아요.”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는 “죽음을 염두에 두고 쓴 시들인 만큼 독자들에게도 시적인 감동 이전에 살아 있다는 것, 소박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게 하고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은이의 상황 때문에 사인회 같은 마케팅은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이해인 수녀 팬카페 ‘민들레의 영토’ 회원들을 비롯해 고정 독자들이 상당 부수를 소화해 주는 것으로 분석한다. 가톨릭 서점을 중심으로 꾸준히 팔리고 있는데, 특히 김수환 추기경 1주기 때라든가 얼마 전 법정 스님 열반 등의 계기가 있을 때는 좀더 분명한 반응이 온다고. 책 뒤에는 암 수술을 받은 2008년 7월14일부터 지난해 말까지 쓴 메모 형식의 일기들이 덧붙여져 있다. 그 때문에 독자들은 이 책을 단순한 시집이 아니라 시산문집 정도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반년 만에 돌아온 본원에서의 일상이 새삼 소중합니다. 성당에서의 기도 소리도, 식당에서의 움직임들도, 정원에서 들리는 새소리도, 모두가 새롭습니다.”(2009. 1. 21) “오늘도 희망의 옷을 입고 고요히 외쳐야겠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라고.”(2009. 12. 29)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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