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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인간 리영희의 속깊은 고백들

등록 2011-01-21 18:41

희망-리영희 산문선 
리영희 지음·임헌영 엮음/한길사·2만2000원
희망-리영희 산문선 리영희 지음·임헌영 엮음/한길사·2만2000원
1월 22일 잠깐독서
희망-리영희 산문선

1960~80년대 엄혹한 군사독재를 몸으로 헤쳐내 본 적이 없는 젊은 세대들에게 ‘지식인 리영희’는 먼 이름이다. ‘시대의 스승’으로 후학들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 어딘지 강직하고 딱딱한 느낌이 커 쉽게 다다가기 힘들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 리영희 선생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선생의 사후 그가 남긴 속깊은 에세이들을 본 뒤였다.

지난해 12월5일 그의 별세 소식을 전해 들은 뒤 <한겨레> 데이터베이스를 뒤져 그가 남긴 칼럼과 에세이들을 검색해봤다. 이목을 잡아끈 것은 리 선생이 1998년 11월20일부터 22일까지 사흘에 걸쳐 ‘리영희 교수의 못다 이룬 귀향’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고향 방문기였다. “나의 북한 방문이 4년만 일찍 이루어졌어도 52년6개월간을 꿈에도 그리던 순희 누님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선생의 글에는 그의 세대가 겪어야 했던 전쟁과 이산의 아픔, 그리고 혈육의 힘으로도 도무지 어찌해 볼 수 없는 체제의 차이 앞에서 느낀 깊은 좌절 등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가 많은 고생을 하다 돌아가셨구나?”

“아니에요. 경애하는 장군님과 당이 먹을 것 입을 것, 모두 보내주어서 고생은 전혀 없었시요. 우리는 부족을 모르고 살았시요. 요 몇해는 조금 어렵지만….”

그는 자신보다 더 늙어 보이는, 그리고 정나미 떨어지는 조카가 전하는 누이의 죽음을 전해 듣고 “편하게 돌아가셨다니, 다행이다”라는 말을 연발하고 만다.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이 펴낸 <희망-리영희 산문선> 속에서도 지식인이기에 앞서 한 여자의 아들이었고 남편이었던, 그리고 감방 생활의 고통과 추위 앞에 몸서리쳤던 한 사내의 고뇌가 담겨 있다. 그의 생활글에서 도드라지게 느껴지는 것은 깔끔했던 성격의 선생이 겪어야 했던 옥살이의 괴로움이다. ‘서대문 형무소의 기억’이라는 글에서 그는 일제 때 형무소 사동 복도에도 있던 스팀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뜯겨 나간 것을 보고 “나는 이게 누구의 정부인가, 차라리 일제보다도 못한 정권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그는 그곳에서 더러운 대나무 젓가락으로 콩밥을 먹고 여름엔 구더기, 겨울엔 동상과 벗삼아 한해를 나야 했던 인간적인 괴로움에 대해 쓴다. 그를 통해 우리는 그의 사상이 책상물림의 지적 허영이 아니라 현실과 부딪히고 상처 입는 과정을 거쳐 단련된 한 지성의 불굴의 의지의 산물임을 확인하게 된다.

‘아내 윤영자와 나’는 선생이 <우상과 이성> 등을 집필한 대가로 2년 형을 선고받던 순간, 선생의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아내의 일기를 훔쳐보는 과정을 통해 재구성한 글이다. 그는 “(평범했던) 아내가 (강연 등에 참석해 얻는 교훈을 통해) 나의 세계로 다가오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꺼꾸로 아내의 세계로 끌려들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책은 지난 2005년 리 선생의 자서전적 성격을 갖는 대담집 <대화>의 속편으로 기획됐다. 엮은이는 책을 펴낸 이유로 “민족사적인 당면과제를 풀어내는 데 탁월한 분석력을 보여줬던 (리 선생의 사상의) 밑바탕에는 풍요로운 인문학적인 소양과 인간중심주의 사상이 깔려 있었음을 강조해야 할 절박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썼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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