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고쳐쓰기
제바스티안 둘리엔, 한스외르크 헤어, 크리스티안 켈러만 지음, 홍기빈 옮김/한겨레출판·1만5000원
제바스티안 둘리엔, 한스외르크 헤어, 크리스티안 켈러만 지음, 홍기빈 옮김/한겨레출판·1만5000원
세계적 경제위기 부른 현실 진단
‘괜찮은 자본주의’ 위한 대안 제시 경제학에서 ‘시장의 실패’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목초지의 비극’이라는 개념을 떠올려 보자. 한 마을에 가축을 먹이기 위한 목초지가 있다. 그곳에 사는 주민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될 수 있는 한 자주 목초지에 가축을 데려가 풀을 먹이는 것이다. 많이 먹은 가축은 젖도 많이 나오고 털도 자주 깎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을 주민 모두가 동시에 그렇게 행동한다면 목초지는 머잖아 황폐해지고, 가축들은 굶어죽게 된다. 게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마을 주민들이 똑같은 수의 가축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수백마리의 가축을 가진 이장과 가축이 없거나 겨우 한 마리만 가진 이들 사이의 경쟁이란 처음부터 불공정한 게임인 셈이다. 이 이야기가 가르쳐 주는 것은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때 사회 전체의 후생도 극대화된다는 이른바 애덤 스미스식 고전경제학의 진리가 사실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독일 사회민주당의 자매단체인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의 후원을 받아 제바스티안 둘리엔 등 독일 경제학자 세명이 함께 쓴 <자본주의 고쳐쓰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괜찮은’(decent) 자본주의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전 지구적 경제위기에 직면한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내놓은 고뇌의 산물이라 부를 만하다. 책은 크게 두 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2차 대전 뒤 전후 부흥을 이끈 브레턴우즈 체제의 성립과 해체, 그리고 현재의 고삐 풀린 금융자본주의가 활개치기까지의 60여년 역사를 경제사적으로 돌아본다. 저자들이 보기에 자본주의가 현재의 위기에 봉착한 것은 시장의 완벽함에 대한 맹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밀한 수치와 그래프로 표시되는 고전경제학의 세계에서 불균형은 ‘장기적’으로 균형점에 수렴될 수밖에 없지만, 경제학자들이 약속했던 ‘장기’(long-term)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 대신 찾아온 것은 계층 간, 국가 간 소득 불균형 확대였고 이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몰고 온 전 지구적 경제위기로 그 절정에 치닫게 된다. 이런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들은 “다시 인간을 위해 기능하는 경제를 만들어내고, 노동력이 단지 대기업과 금융 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만 투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수요 증진과 녹색 성장에 초점을 둬야 하고, 소득분배를 공평하게 해야 하며, 시장에게 부정당한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또 전 지구적으로는 세계화된 자본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전 지구적 통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저자들이 제안하는 대안은 “지구적 금융체제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개혁안을 개발하고, 각국 사이의 정보를 긴밀하게 교환할 수 있는” ‘세계경제위원회’의 출범이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어떻게 했을까. 이장과 같은 기득권 세력의 이기심을 통제하고 지속가능한 목초지 활용 방안을 만든 마을은 번영했지만, 그렇지 못한 마을은 해체됐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모범답안이 아니라 그에 이르는 치열한 정치적 과정인 셈인데, 그렇게 본다면 책은 일부 독자들에게 다소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자본주의의 여러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글을 써왔던 홍기빈씨가 옮겼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괜찮은 자본주의’ 위한 대안 제시 경제학에서 ‘시장의 실패’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목초지의 비극’이라는 개념을 떠올려 보자. 한 마을에 가축을 먹이기 위한 목초지가 있다. 그곳에 사는 주민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될 수 있는 한 자주 목초지에 가축을 데려가 풀을 먹이는 것이다. 많이 먹은 가축은 젖도 많이 나오고 털도 자주 깎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을 주민 모두가 동시에 그렇게 행동한다면 목초지는 머잖아 황폐해지고, 가축들은 굶어죽게 된다. 게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마을 주민들이 똑같은 수의 가축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수백마리의 가축을 가진 이장과 가축이 없거나 겨우 한 마리만 가진 이들 사이의 경쟁이란 처음부터 불공정한 게임인 셈이다. 이 이야기가 가르쳐 주는 것은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때 사회 전체의 후생도 극대화된다는 이른바 애덤 스미스식 고전경제학의 진리가 사실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독일 사회민주당의 자매단체인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의 후원을 받아 제바스티안 둘리엔 등 독일 경제학자 세명이 함께 쓴 <자본주의 고쳐쓰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괜찮은’(decent) 자본주의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전 지구적 경제위기에 직면한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내놓은 고뇌의 산물이라 부를 만하다. 책은 크게 두 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2차 대전 뒤 전후 부흥을 이끈 브레턴우즈 체제의 성립과 해체, 그리고 현재의 고삐 풀린 금융자본주의가 활개치기까지의 60여년 역사를 경제사적으로 돌아본다. 저자들이 보기에 자본주의가 현재의 위기에 봉착한 것은 시장의 완벽함에 대한 맹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밀한 수치와 그래프로 표시되는 고전경제학의 세계에서 불균형은 ‘장기적’으로 균형점에 수렴될 수밖에 없지만, 경제학자들이 약속했던 ‘장기’(long-term)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 대신 찾아온 것은 계층 간, 국가 간 소득 불균형 확대였고 이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몰고 온 전 지구적 경제위기로 그 절정에 치닫게 된다. 이런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들은 “다시 인간을 위해 기능하는 경제를 만들어내고, 노동력이 단지 대기업과 금융 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만 투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수요 증진과 녹색 성장에 초점을 둬야 하고, 소득분배를 공평하게 해야 하며, 시장에게 부정당한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또 전 지구적으로는 세계화된 자본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전 지구적 통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저자들이 제안하는 대안은 “지구적 금융체제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개혁안을 개발하고, 각국 사이의 정보를 긴밀하게 교환할 수 있는” ‘세계경제위원회’의 출범이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어떻게 했을까. 이장과 같은 기득권 세력의 이기심을 통제하고 지속가능한 목초지 활용 방안을 만든 마을은 번영했지만, 그렇지 못한 마을은 해체됐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모범답안이 아니라 그에 이르는 치열한 정치적 과정인 셈인데, 그렇게 본다면 책은 일부 독자들에게 다소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자본주의의 여러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글을 써왔던 홍기빈씨가 옮겼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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