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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빵점 시인’ 열 받았다, 문학 교육 혁신하라!

등록 2013-10-27 19:56수정 2013-10-29 12:08

최재봉 문화부 기자
최재봉 문화부 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원로 시인 신경림은 특별한 경험을 했다. 전교조 소속 교사들을 격려하고자 일선 중학교를 방문한 참에 참고서에 나온 문제를 풀어 보았던 것. 신경림 시인 자신의 유명한 시 <가난한 사랑 노래>를 가지고 낸 문제들이었다. 모두 10개를 풀어 보았는데, 시인이 맞힌 것은 셋뿐이었단다. 그러니까 100점 만점에 30점.

신경림 시인만이 아니다. 최승호 시인 역시 연전에 국어 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던 중 비슷한 고백을 했다. 자신의 시를 가지고 낸 2004년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 보았는데 단 한 문제도 맞히지 못했다는 것. 그러니까 여기는 빵점이다!

웃기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이 일화들은 지금 우리네 문학 교육의 문제적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문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교육이 오히려 문학을 멀리하게 만드는 반(反)교육으로서의 교육 말이다.

참다못한 시인들이 나섰다. 한국시인협회(회장 신달자)가 다음달 2~3일 ‘공교육의 시 교육,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정기 세미나를 여는 것이다. 대구 팔공산 평산아카데미에서 열리는 이 세미나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시 교육 및 문학 교육의 문제를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마련되었다. 시인 곽효환과 연구자 인선주(경기대 대학원 박사과정)씨는 제7차 교육과정에 따른 초등학교 시 교육에 관해 발표한다. 초등 저학년의 경우 “시의 형식적 요소를 중심으로, 반복되는 말을 사용해 문학작품의 표현적 특성을 알 수 있도록” 하는 데 치우침으로써 “시의 내용이나 정서 등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과는 멀어질 우려”가 있다고 이들은 미리 공개한 발표문에서 지적했다. 2007년 개정 교과서가 1학년 과정부터 시 쓰기 활동을 두었던 데 반해 2009년 개정 교과서에서는 2학년 과정에 가서야 비로소 시 쓰기가 나오는 점은 퇴보한 것이란다.

중고교 교육 과정에 대해 발표하는 시인 손진은(경주대 교수)은 △획일적 작품 해석 △창작 교육 부재 △선택형 문항에 의한 평가 방식 등을 문제점으로 들고 시의 예술적 가치와 정서적 가치에 역점을 두는 가치 중심 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예술원 회원인 오세영 시인은 국어 교육의 문제를 주제로 총론 격의 발표를 할 예정인데, 몇 가지 과격(?)하지만 흥미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우선 그는 문학이 선택과목이 되어 국어에서 분리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오 시인에 따르면 그것은 말하기·듣기·쓰기 같은 언어 능력 향상을 최우선으로 삼는 ‘기능주의 교육관’에 따른 결정이지만, “국어 교육의 목적은 단순한 기능만이 아니라 더 심원한 철학적·이념적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그런 목적의 실현은 바로 문학 교육이 담당한다.” 그는 국어 교육 자체를 문학 중심으로 재편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이어서 “‘언어’ 분야의 객관식 5지선다형 출제 방식은 당장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구적 가치관과 획일적 사고를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 출제 방식을 택하되 △출제 범위를 교과서에 한정시키지 말고 폭넓게 개방해야 하며 △중고교 재학 중 일정량의 문학 독서를 의무화하자는 등의 제안 역시 내놓았다.

시가 시인을 배신하고 문학 교육이 문학에 등 돌리게 만드는 씁쓸한 교육 현실에 대한 시인들의 외침에 어떤 메아리가 돌아올지 주목된다.

최재봉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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