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 문화부 기자
후배의 남편이 하루는 뜬금없이 그러더란다. “아무래도 자본주의는 아닌 것 같아.” 사회과학이나 경제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공대생 출신인데, 마르크스의 이론을 알고 싶어 한다기에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권했다. 그것 말고도 요즘은 읽을 만한 <자본> 관련 책들이 꽤 많이 쏟아져 나왔다. ‘피케티 효과’다.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킨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한국어판이 지난 주말 서점에 깔렸다. 하루 동안 서울 광화문 대형서점에서만 무려 120여권이 팔렸다고 한다. 출판사 쪽은 앞으로 하루 1000권은 너끈히 팔려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선주문만 한달 새 6000권으로 이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니, 난리굿이다.
피케티의 책은 방대하고 까다롭지만 결론은 어렵지 않다.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300년 동안의 데이터를 분석해 소득이 소수 엘리트에 집중되는 현상을 밝히고 지금의 자본주의를 ‘21세기 세습 자본주의’라고 정의했다. 노력보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대손손 부가 세습되니 ‘계층’이라 쓰고 ‘계급’이라 읽을 만하다.
이런 분석은 세계 주류 경제학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경제발전의 어느 단계를 지나면 불평등이 축소된다는 쿠즈네츠의 유명한 ‘역 유(U)자 가설’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경제학 교과서 <경제학 원론>의 지은이 그레고리 맨큐는 피케티의 이론을 하나의 가설일 뿐이라 혹평했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분석의 오류가 있다고 깎아내렸다. (하지만 결국 신문사 쪽의 오류임이 드러났다.) 개발경제학자인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앵거스 디턴 교수는 자본주의가 인류의 삶을 가난으로부터 구한 공로를 강조하며 한술 더 떴다.
우리나라 우파 주류 경제학자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불평등이 오히려 혁신의 원동력이 될 수 있고, 불평등을 해소하면 생산의욕을 잃는다고 주장한다. ‘불평등 필요악’에 가깝다. 길게 설명들 하지만, 사실 ‘불평등은 불가피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 게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고, 쉽게 구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자고 하지 않았다. 다만, 불로소득에 집중하며 부자들한테서 세금을 더 걷자고 제안한다. 누진적인 자본세를 만들어 불평등의 악순환을 피하자고 했다. 새로운 것을 건설하지 않는다면 이미 이뤄놓은 자본주의의 성취조차 잠식할 뿐이라고 염려한다. 자본주의를 제대로 경영하자는 제안이니까,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우파에선 박수치고 좌파들이 펄쩍뛰어야 할 얘기다.
최근 통계로 계산해보면,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일본이나 이탈리아보다 심각하며 100년 전 프랑스 수준이라고 한다. 정말 그런지, 앞으로 검증 작업이 이뤄질 것이다. 젊은 외국 경제학자가 내놓은 경제불평등 이론을 놓고 우리나라의 이데올로그 격인 좌우파 거목들이 벌일 격론을 생각하니, 한편 씁쓸하지만 기대도 크다.
며칠 뒤 우리나라에 온다는 피케티도 이런 현상을 환영할지 모른다. ‘정치경제학’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했으니까 말이다. 그는 “돈 많은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며 특히 시민이 돈과 관련된 사안들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시민이 정치적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소리다. 가진 자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유진 문화부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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