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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왜곡된 사료

등록 2016-02-11 20:21수정 2016-05-27 10:58

강명관의 고금유사
국사편찬위원회는 1946년 3월 국사관(國史館)이란 이름으로 설립되었고, 1949년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로 명칭을 바꾼다. 국편은 한국사료총서를 발간하는데, 그 네 번째 책이 장지연의 문집인 <위암문고>다. <위암문고>에는 장지연의 일생을 재구성하는 데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한 ‘연보’(‘문고본연보’)가 실려 있다.

<위암문고>는 총독부 검열을 거친 필사본(장지연 가문 소장)을 국편에서 1956년 발간한 것이다. <위암문고>의 대본이 되었던 필사본은, 1989년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에서 간행한 <장지연전서>에 영인본으로 실려 있다. 두 책에 실린 장지연의 문집은 동일한 것이지만, 부록 부분이 약간 다르다. <위암문고>의 범례를 따르면, <위암문고>의 부록은 국편 소장 부본에 의하여 출판한 것이라 한다. 문제는 이 부본에 근거한 부록에 실린 연보, 곧 ‘문고본연보’가 <장지연전서> 쪽의 ‘전집본연보’와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전집본연보’는 서술 주체가 ‘나’(余)로 되어 있으니, 장지연이 직접 작성한 것이고 또 아주 상세하다. 국편은 왜 문집 본문만 취해 간행하고, ‘전집본연보’를 빼버렸던가?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다. ‘문고본연보’의 다음 부분을 보자.

갑인년(1914), 51세, 10월. 매일신보사에서 같이 일을 하자고 요청하였으나, 듣지 않았다(自每日申報社, 邀請同事, 不聽).

매일신보사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다. ‘시일야방성대곡’의 항일언론인 장지연이 총독부의 기관지에서 기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거절이 당연하다.

그런데 ‘전집본연보’를 보면 완전히 반대다. ‘전집본연보’는 그해 10월 친일언론인 방태영(方台榮)이 매일신보사 사장 아부충가(阿部充家)의 명을 받들고 찾아와 매일신보사에 입사할 것을 요청한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열흘 뒤에는 아부충가가 직접 찾아와 부탁했다. 장지연은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내걸고 <매일신보>에 글을 쓰기로 한다. 첫째 단지 객례(客禮)로 대우할 것, 곧 사원(社員)이라 부르지 말 것, 둘째 일사(逸士)의 유사(遺事)와 종교·풍속 등에 관한 글만 쓰되, 신문사에 들어가서는 쓰지 않는다(여관에서만 쓴다), 셋째 아부충가가 사장을 그만두면 집필을 그만둔다.

장지연은 이후 <매일신보>에 엄청난 분량의 글을 쓰는데, 그중에는 일제의 지배를 긍정하거나 그에 협조하는 글도 있었다. 이것은 참으로 곤혹스러운 사실이 아닌가. 1956년 <위암문고>를 발간할 당시 국편 위원장은 역사학자 신석호다. 그는 <위암문고>의 해설을 썼다. 1904년생인 신석호가 장지연을 모를 리 없다. 추측하건대 나는 신석호를 비롯한 당시 국편에서 장지연과 매일신보사와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전집본연보’를 싣지 않고, 도리어 ‘문고본연보’에서 매일신보사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사료를 왜곡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위암문고>에서는 장지연과 매일신보의 관계도 또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국편에서 ‘올바른’ 한국사 교과서를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한사코 집필자를 감추는 국편의 모습을 보니, 장지연의 왜곡된 연보가 언뜻 생각난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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