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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독부론(獨夫論)

등록 2016-11-17 19:19수정 2016-11-17 19:35

강명관의 고금유사
은(殷)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은 폭군이었다. 폭군은 원래 전쟁을 좋아한다. 주왕은 동이족을 정벌한다는 구실로 전쟁을 일으켜 국력을 소모했다. 전쟁은 죽음이다. 숱한 백성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던 것은 물론이다. 주왕이 술과 섹스에 탐닉한 것도 불문가지다. 놀려고 작정하면 돈이 필요한 법! 당연히 무거운 세금을 긁어들였다. 혹 불평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혹형으로 다스렸다. 보다 못한 제후들이 한 마디 간언이라도 꺼내면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었다. 급기야 숙부인 비간(比干)까지 나서서 폭정을 멈출 것을 간하자, 주왕은 “그래,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 있다지” 하고는 비간을 죽이고 심장을 꺼내 보았다.

주왕의 폭정은 반발을 불렀다. 주(周)의 무왕(武王)이 제후를 규합하여 주왕을 정벌했다. 주왕의 죽음과 함께 은은 멸망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군주와 제후의 관계는 아비와 아들의 관계와 같다. 아비가 잘못하기로서니 어찌 아들이 아비를 정벌할 수 있단 말이냐? 신하인 무왕이 군주인 주왕을 정벌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맹자는 이 물음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한다. ‘잔’과 ‘적’을 모두 갖추고 있는 사람을 ‘일부’(一夫, 한 사내)라고 부른다. 나는 ‘일부’인 주(紂)를 죽였다는 말을 들었을 뿐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맹자의 말을 음미해 보자. 인의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갖추고 있는 기본적인 윤리심이다. 이것이 파괴된 인간은 왕일 수 없다. 그 자는 윤리심이 파괴된 일개 인간일 뿐이다. 나는 윤리심이 파괴된 인간을 처벌했다는 말을 들었을 뿐 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일부’란 말은 ‘독부(獨夫)’란 말과 같다. <서경>에는 무왕이 주왕을 정벌하기 직전 군사들에게 했던 연설이 실려 있다. 한 부분을 들어보자.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를 어루만져주면 임금이요, 나를 학대하면 원수다’라고 하였다. 독부(獨夫) 수(受, 주왕의 이름)가 크게 위세를 떨치니 그 자는 대대로 너희들의 원수인 자이다.” 여기서 ‘독부’는 잔인한 행위로 인해 모두에게 버림받은, 고립되어 있는 일개 인간일 뿐이다. ‘독부’는 곧 맹자가 말한 ‘일부’다. 요즘 말로 하자면, 민중에게 버림받은 독재자인 것이다. 무왕과 맹자의 가르침은 어렵지 않다. 민중을 해치는 독재자는 거리낌 없이 내쫓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 나라의 지배세력은 대한민국을 왕조국가로 여기고 있다. 그러기에 박근혜-최순길 게이트가 가능한 것이고, 그들을 결사 옹위하는 새누리당 친박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믿고 있는 국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지난 11월12일 도도한 촛불의 물결은 청와대를 에워싸고 한 목소리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외쳤다.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더 이상 청와대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왕조시대의 ‘독부’일 뿐이라는 선언이었다.

국민의 단결된 힘은 독부를 몰아낼 수 있다. 다만 독부가 다른 독부로 대치되지 않도록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다시는 독부를 만들어내지 않도록 시스템을 고치는 것이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공화국은 그렇게 해서 완성될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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