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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공정함의 관건은 처벌에 있다

등록 2017-01-05 18:50수정 2017-01-06 08:53

정인경의 과학 읽기
우리 그리고 우리를 인간답게 해주는 것들
베르너 지퍼 지음, 안미라 옮김/소담출판사(2013)

다윈주의자들은 ‘진화적 인본주의’를 말한다. 인간은 동물에서 유래한 진화의 산물이지만 인간다운 그 무엇이 있다고 말이다. 다윈의 불독으로 불렸던 토마스 헉슬리는 진화적 인본주의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것은 인류에 대한 믿음, 동료애, 그리고 헌신이다. 인간은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이다.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원칙은 인류의 미래를 밝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진화적 인본주의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과학자들이 지녀야 할 가치관이다.

독일의 뇌과학자이며 생물학자, 베르너 지퍼는 ‘너’와 ‘나’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너와 내가 함께하는 ‘우리’에 주목했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인간의 사회성에서 그 답을 찾았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게 진화했고, 인간의 지속적인 행복은 ‘우리’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책 제목이 <우리 그리고 우리를 인간답게 해주는 것들>이다.

인간은 뇌와 신경계에 타인과의 관계 탐지 기능을 타고 났다. 알다시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공감할 수 있는 거울 신경세포, 공감 뉴런이다. 이것을 통해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의 감정과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인간다움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서로가 공감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공정함’이다. 인간은 자신이 타인과 동등하게 대우받는다고 느낄 때 서로 공감할 수 있다. 불평등한 인간관계에서는 공감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베르너 지퍼는 인간다움에 있어서 공감만큼이나 중요한 감정으로 공정함을 꼽는다.

인간의 뇌는 공정함과 부당함에 대한 정확한 느낌을 가진다. 공정함에 대한 기본적인 감각은 동물들에게도 나타난다. 일례로 뇌과학자들은 꼬리감는 원숭이에게 장난감 동전과 오이를 바꿔 먹는 훈련을 시켰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원숭이에게 동전 한 개로 오이보다 더 달고 맛있는 포도를 바꿔주었다고 한다. 이 광경을 본 원숭이는 오이 바꿔먹기 훈련을 때려쳤다. 부당함을 느낀 것이다. 원숭이는 매우 화를 내고 오이를 집어 던져버렸다. 이렇듯 불공정과 차별은 분노를 일으키고 협조를 거부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공정한 규칙이 지켜지지 않을 때 인간은 어떠한가? 우리는 오랜 역사에서 규칙을 위반하고 관습을 깨트리는 사람들과 맞서왔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선호하는 공정함이 법과 경찰, 감독 기관을 발명했다고 보았다. 불공정 행위를 하는 비열한 인간을 처벌하도록 말이다. ‘앞으로 반드시 규칙을 지켜라! 우리처럼 행동해라!’ 이러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처벌은 공동체를 강화시켜주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했다.

우리는 공정함을 원하듯, 사회악의 처벌을 원한다. 과학자들은 뇌 스캐너를 동원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 인간의 뇌는 잘못된 행위를 벌할 때와 좋아하는 친구를 만날 때에 똑같이 반응했다. 보상을 관장하는 뇌의 동일한 부위가 활성화되며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 우리는 처벌을 통해 공정한 사회가 지켜지는 데에 기쁨을 느끼는 존재였던 것이다. 인간은 공정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베르너 지퍼는 ‘그렇다’고 말한다. 이러한 공정함이 ‘우리를 인간답게 해주는 것들’이다. 만약 여러분들의 새해 소원이 범법자들의 처벌이라면, 그것은 인간다운 너무나 인간다운 바람인 것이다.

정인경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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