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패망 이후 70여년 동안 이뤄진 ‘전후 일본’을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어떤 인물일까? 일본 <교도통신> 기자 출신의 독립 언론인 아오키 오사무(50·사진)가 지난달 펴낸 <아베 3대>(安倍三代)는 이 간단하지만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아베 총리는 역대 일본 정부가 부정해온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허용하는 안보 관련 법제를 제·개정한 뒤 ‘평화헌법’의 개헌까지 노리는 등 전후 일본의 전통과 제도를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다. 지금처럼 자민당 내의 ‘아베 독주’ 체제가 이어진다면, 아베 총리는 2021년 9월까지 총리직을 수행해 작은할아버지인 사토 에이사쿠(2798일)를 넘어 전후 최장수 총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촛불집회’의 열기를 타고 선출될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한-일 정부의 12·28 합의’의 운명을 놓고 아베 총리를 상대해야 한다. ‘아베 총리는 대체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지금 한국인들에게도 유효한 질문이다. 지난 1일 도쿄 미나토구의 한 카페에서 아오키와 얼굴을 마주했다.
연재기사 묶어낸 ‘아베 3대’로 화제 ‘전후 70년’ 일본 해체하는 첫 총리 “아베 싫지만 어떤 인물인지 궁금”
조부 간-부친 신타로는 ‘평화주의자’ ‘전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와 친밀 “지성은 갖추지 못한 ‘열화 카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베 총리가 싫다. 그러나 언론인으로서 사실로 인정해야 하는 점이 있다. 아베 총리는 1차 정권 때는 실패했지만 2번째에선 집권 5년째를 맞기까지 지지율도 그럭저럭 50~6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아베 정권에 대한 지지 여부와는 별개로 이 정권이 일본의 개헌까지 노리는 역사적인 정권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인으로서 ‘아베 총리는 대체 무엇인가’, ‘우린 왜 전후 70년에 이런 정권을 갖게 됐는가’를 취재해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베 총리는 흔히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를 존경한다고 말하지만, 정치인으로서는 할아버지인 아베 간과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의 루트를 따랐다. 그래서 ‘간~신타로~신조’ 이들 3대를 제대로 그려보고 싶었다. 이 과정을 통해 전후 70여년 동안 이어진 일본 정치의 큰 흐름을 잡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책은 아오키가 아사히신문사에서 나오는 주간지 <아에라>(AERA)에 2015년 기고한 시리즈를 뼈대로 지난 1월20일에 나왔다. 출판 10일 만에 2쇄를 찍을 정도로 책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조부인 간은 전쟁으로 치닫는 1930~40년대 일본 정계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주의를 고집했던 반골이자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42년 4월 ‘익찬 선거’(일종의 어용선거)에서는 경찰 등의 거센 탄압 속에서도 의석을 지켜내는 저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패전 이후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펼 기회도 얻지 못한 채 46년 1월 사망한다.
24년생인 아버지 신타로 역시 학창 시절 해군의 가미카제 특공대로 징병당한 적이 있는, 전쟁의 참혹함을 사무치게 경험한 세대였다. 그는 자민당에 속한 보수 정치인이었지만 절묘한 균형 감각을 갖춘 평화주의자이기도 했다. 신타로는 살아생전 아베 총리에게 “신조야, 나는 아베 간의 아들이다. 난 반전 평화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따른 길은 친가인 간과 신타로가 아닌 외가인 ‘쇼와의 요괴’ 기시 노부스케의 길이었다. 왜 그랬을까. “아베 총리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도쿄에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선거구가 야마구치인 탓에 늘 떨어져 지냈다. 그런 때 아베와 형인 히로노부를 자주 불러 귀여워해줬던 게 외할아버지인 기시(기시에겐 친손자가 없다)였다. 그리고 어머니인 요코의 영향이 컸다. 요코는 남편도 소중히 생각했지만 친정아버지를 엄청 존경했다. 오늘날 아베의 사상 형성엔 그런 ‘가정적인 원점’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기시와 같은 지성은 갖추지 못한 ‘열화(劣化·질이 나빠진) 카피’다.”
유년과 청년 시절의 아베 총리를 기억하는 지인 수십명을 인터뷰한 뒤 아오키가 내린 결론은 “아베는 자신 안에 형성된 단단한 사상이나 이데올로기가 있는 인물은 아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문제 의식은 현재 일본 정치를 지배하는 세습 의원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간이나 신타로 혹은 기시도 현재 일본 사회나 정치를 어떻게 바꾸고 싶다는, 내부의 정열이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정치가가 되는 게 보통이지만, 아베 총리는 ‘아버지, 할아버지가 정치가였다. 나도 그렇게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치가가 된 세습 의원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내가 이렇게 하고 싶다는 게’ 별로 없는 상태에서 정치가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둘이 닮은 사람인지 모른다.”
특별한 자기 나름의 철학이나 사상이 없었던 두 정치인이 이들의 존재를 필요로 했던 ‘세력’(일본의 극우, 한국의 수구)에 의해 휘둘리면서 한·일 양국 사회에 큰 충격과 아픔을 던지고 있다는 결론인 셈이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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