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매거진 제주>, 김종민 씀, “오름나그네 김종철”, 2016년 가을호, 제주특별자치도
1997년 12월, ‘대통령 김대중’이 탄생했다. 돌이켜보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 달 후. 1998년은 제주 4·3 사건이 발발한 지 50주기가 된 해였고 그해 초겨울, 기념 학술대회가 열렸다. 한국 사회는 공식적으로 ‘처음’, 4·3을 기억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말단 스태프로 참여했다.
여행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서울 촌뜨기였던 나는 서른이 되어서야 비행기를 타보았다. 어디서나 심심함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 캄(Morning Calm)>을 읽었다. 제주의 오름을 소개하는 기사가 있었다. 생전 처음 본 오름 사진은 황홀했고 문장은 부드러웠다.
필자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종민. <4·3은 말한다>(전 5권)를 쓴 <제민일보> 4·3취재반의 일원이었고, 4·3 전문가로 유명한 역사학자였다. 항공사 광고 음악 ‘웰컴 투 마이 월드’가 언제 나왔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지금 기억으로는 글을 읽는 동안에 나는 그 노래에 맞추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지금 글은 서평에 대한 서평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발행하는 <매거진 제주>(www.jeju.go.kr/news/online/jejustory.htm)에 김종민은 제주의 산악인이자 언론인, 교육자였던 김종철(金鍾喆, 1927~1995)의 <오름 나그네>(전3권)에 대해 썼다. 그의 글은 “책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한때 잠시나마 선생과 대화를 나누며 교감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겐 매우 영광이었고,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늘 기쁘다”로 끝난다.
“나는 기쁘다”는 마지막이 인상적이다. 매순간 진실했던 한 인간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한 글인데, 이토록 소박한 표현이라니. 약간 불편한 부분도 있는데 ‘마초의 순정’이라고 해 두자. 가장 멋진 문장은 이것이다. “나는 지금도 (김종철의)<오름나그네>를 표절하지 않으면 결코 오름을 묘사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절의 의미는 부정적이다. 특히 일부 학계의 표절은 복사, 절도 수준이다. 인터넷에서 남의 논문을 다운로드하고, 제자의 논문을 가로채고, 학위 논문 대필 아르바이트도 심심찮다.
참조 없이 창조 없다. 내가 생각하는 표절(剽竊)은 다르다. ‘절’자에는 “조용히, 살짝”이라는 뜻도 있다. 표절은 읽기에 기반한 창조다. 그래서 표절은 기원이나 원본 논쟁과 무관하다. 좋은 글은 훌륭한 생각과 그 생각을 몸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능력, 표현력의 결합이다. 표현력을 기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온몸이 열려 있어서 무방비로 세상을 받아들일 때 ‘저절로’ 나오는 경우고, 하나는 독서다.
예를 들어, 나는 최근 마거릿 애트우드의 “남자는 여자가 자기를 무시할까봐 두려워하지만, 여자는 남자가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한다”는 표현을 읽고 ‘웃다가’ 그 뒤에 덧붙였다. “나는 돈 달라는 남자와 이메일 하자는 남자가 제일 무섭다”.
표절은 독서에 자기 인생을 보태는 예술이다. 김종민의 표절은 용해된 김종철이다. 문장력은 사랑하는 책이 많고, 그 책의 정치적 역사적 문맥을 알고, 가슴 아파하는 자신의 살결이 닿는 순간의 힘이다. 김종민에게 제주, 오름, 김종철, 4·3 연구는 하나일 것이다. 김종철 선생에 대한 추억이 그를 살게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글쓴이의 삶이 풍요롭지 않다면, 치열하지 않다면 표절도 없다. 표절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름을 묘사할 때 문장과 4·3 기사와 논문에서 그의 문체는 다르다. 대상과 닿은 몸의 면(面)은 현실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 다면성과 깊이가 글쓴이의 용량이 된다. 사랑과 정의, 풍경과 풍경 속의 참혹함, 집요함과 내려놓음, 기대와 좌절…. 이들은 하나다. 그것이 제주의 ‘자연’과 4·3이라는 ‘역사’의 결합이었으니.
‘서울 4·3’과 ‘서울 5·18’은 불가능하다. 오름을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나로서는 읽기조차 죽음의 경험이었던, <4·3은 말한다>를 쓸 수 있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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