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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없는 나라

등록 2017-05-11 20:01수정 2017-05-11 20:31

강명관의 고금유사
신흠(申欽, 1566~1628)은 <휘언>(彙言)이란 에세이집에서 삼국시대의 고구려·신라·백제는 전국(戰國), 곧 전쟁에 유능한 나라였다고 평가한다. 그 증거로 수양제(隋煬帝)나 당태종(唐太宗)처럼 강대한 세력을 자랑하고 줄곧 승리를 거두었던 자들도 한반도에서 뜻을 이룰 수 없었던 사실을 들었다. 뿐만 아니라 고려 때에도 거란·몽고·카단(哈丹)·동진(東眞)의 침입을 수십 년 동안 잘 버텼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이다. 유독 조선만이 ‘군대 없는 나라’(無兵之國)가 되어 임진왜란 때 아무 하는 일 없이 군대도 군량도 모두 중국만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허균(許筠, 1569~1618)의 의견도 같다. <병론>(兵論)에서 그는 군대 없는 나라는 존속할 수 없는 법이지만, 희한하게도 조선은 군대가 없이 존속하고 있는데, 그것은 순전히 우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일본이 다시 쳐들어오지 않고 여진족들 역시 북쪽 변경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기에 평화를 누리고 있지만, 이것은 모두 우연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허균의 말처럼 정말 조선에 군대가 없었던 것인가. 있기는 하지만 적어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게다가 제대로 된 국방정책이 없고 유능한 장수가 없다. 국방정책을 제대로 세우고 유능한 장수가 전권을 쥐고 10만의 군사를 조련한다면 나라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길을 찾지 않고 난리만 나면 도망할 계획만 세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허균은 고려시대는 달랐다고 말한다. 고려는 군정(軍政)이 엄하기 짝이 없어, 조정의 고위관료의 자식, 학교의 선비, 평민과 노비까지 맡은 임무와 계급은 다를지라도 모두 군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병사들은 평소 후한 대우를 받으며 훈련을 거쳤기에 전쟁이 나면 장수와 쉽게 호흡을 맞추어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이런 까닭에 소손녕(蕭遜寧), 금산(金山)·금시(金始), 살리타(撒禮塔), 모거경(毛居敬)·유사(劉沙)·관선생(關先生) 등의 침입을 모두 싸워서 격퇴할 수 있었다.

조선은 고려보다 땅이 작지 않다. 백성도 줄지 않았다. 그런데 왜 군대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조정의 고위관료들, 학교의 선비는 물론, 관청의 노복과 천민들까지 모두 군적에서 빠지려 들고, 군정을 맡은 관리들은 군대의 골수까지 뽑아 먹는다. 장수 역시 능력이 아니라 임금의 주위에서 비위를 맞추는 인간들로 채운다. 이러니 전쟁이 나면 군사는 싸울 의지가 없이 흩어지기 마련이다. 군대 없는 나라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신흠 사후 8년, 허균 사후 18년 뒤 병자호란이 일어났다(1636년). 조선은 변변한 전투 한 번 치르지 못하고 청(淸)에 항복했다. 신흠과 허균의 말처럼 ‘군대 없는 나라’가 맞이한 파국이었다. 오늘을 돌아본다. 과거 오직 중국만을 바라보았던 조선처럼 오직 미국만을 바라보고 있는 이 나라에 군대가 있는 것인가.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쫓기듯 사드 배치를 강행한 자들은 과연 나라를 지킬 의지가 있는 한국의 장수인가. 새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대통령은 무엇보다 미국의 창귀(?鬼)가 되어 사드 배치에 앞장선 사람들의 책임부터 물어야 할 것이다. 그게 군대 있는 나라가 되는 첫걸음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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