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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간과 기억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등록 2017-12-28 19:22수정 2017-12-28 19:52

정인경의 과학 읽기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 김승욱 옮김/에코리브르(2005)

한 해가 가고 있다. 이맘때면 시간이 참 빨리 간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앞의 시간은 멈출 줄 모른다. 지난 시간은 마음 속 기억으로 남고, 그 기억조차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어간다. 물리학자는 시공간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규명하지만 생물학자는 시간의 존재를 인간의 의식에서 찾는다.

시간과 기억의 불가분의 관계는 어디서 온 것일까? 생리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자극 받은 감각을 의식하는 데 0.3~0.5초 가량 걸린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느낌은 과거에 관한 것들이다. 어쩌면 시간이란 우리가 의식하고 기억하는 일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시간은 마음(뇌의 활동)에 의지하기에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간다고 느끼는 것이다.

시간은 우리 마음 속에서 부풀려지거나 찌그러든다. 충격적인 사건 앞에서 시간은 멈춰버린다. 10년이 지났지만 바로 어제 일어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되기도 한다. 새로운 일이 가득 찬 20대의 시간은 젊지만 노년이 되면 시간이 무서울 정도로 덧없이 흘러가버린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왜 빨리 흘러가는 것일까? 심리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다우어 드라이스마는 실험적으로 재현할 수 없는 인간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주목했다. 그리고 시간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요인들이 무엇인지 파헤쳐보았다.

인생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 같은 느낌은 분명히 있다. 시간의 길이와 속도는 뇌에서 기억이 만든 것이다. 우리의 기억은 화가가 원근법으로 그려낸 공간처럼 시간 속에서 경험한 사건들을 정돈한다. 같은 시간이라도 기억할 만한 사건이 많으면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

10대와 20대에는 수많은 첫 경험들이 시간을 채운다. 젊은 날의 삶은 다채롭고, 기억의 표식도 많아진다. 80대의 노인에게 자전적 기억을 물어보면 20대의 일을 가장 많이 이야기한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회상 효과’라는 부른다. 중년 이후에는 기억할 말한 일들이 줄어들면서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또한 나이를 먹으면 우리 몸의 생리적 시계가 변화한다. 호흡, 혈압, 맥박, 수면, 신진대사, 호르몬 방출 등 우리 삶의 생체 리듬을 관장하는 것들이 느려지기 시작한다. 예컨대 노인은 젊은이들처럼 3분의 길이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실험 결과가 말해주는데 노인에게 3분은 5분 정도로 길어진다. 노인이 느끼는 하루 24시간은 15시간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생리적 시계와 행동이 느려지고 그만큼 세상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나이듦을 피할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인생을 길게 사는 법은 있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기억이 있고 그 기억에 따라 시간에 대한 느낌이 달라진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배울 점이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된 프랑스 철학자이며 심리학자인 장 마리 귀요는 이렇게 조언한다. 우리 인생이 무대라면 기억은 무대감독이다. 우리가 느끼는 강도와 순서에 따라 기억은 재배열된다. “‘한 해가 또 갔구나! 내가 지난 1년 동안 뭘 했지? 뭘 느끼고, 뭘 보고, 뭘 이룩했지?’ 어떻게 365일이 두어 달처럼 느껴지는 거지? 시간을 길게 늘이고 싶다면 기회가 있을 때 새로운 것들로 시간을 채워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대목은 ‘기회가 있을 때’라는 구절인 듯싶다.

정인경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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