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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해할 수 없어도 좋아할 수 있는

등록 2018-01-25 19:26수정 2018-01-25 19:49

정인경의 과학 읽기

스핀
이강영 지음/계단(2018)

물리학에서 양자는 존재하는 것의 최소량을 뜻한다. 원자보다 더 작은 세계에 ‘아주 작은 덩어리’가 양자다. 그런데 양자의 세계는 큰 사물의 축소판처럼 운용되지 않는다. 양자는 우리의 일상적 경험하고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데 누구도 그 이유를 모른다. 양자는 “원래 그렇다”가 답이다. 양자만의 방식으로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 물리학자들조차 혼란에 빠트린 악명 높은 과학이 양자역학이다.

이강영의 <스핀>은 그 무시무시한 양자를 다루는 책이다. 양자역학이라는 산을 넘으려면 알아야 할 개념 중에 하나가 바로 ‘스핀’이다. 원자 속의 전자를 정의할 때 “질량과 전하, 그리고 스핀을 갖고 있는 점입자”라고 한다. 이렇듯 스핀은 양자역학에서 기본적인 용어인데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물리학 교과서에서 한 두 페이지 정도로 쓰여진 설명으로는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물리학자이면서 탁월한 스토리텔러인 이강영은 ‘스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내서 누구든 읽어볼 용기가 나게 만들었다. 파울리와 보어가 작은 팽이가 도는 것을 보고 있는 사진이 등장하고 스핀은 이렇게 설명된다. “전자가 스핀을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말은 질량이나 전하처럼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성질이라는 뜻이다. 스핀의 크기는 변하지 않는다. 회전을 멈출 수 없고, 더 빨리 돌 수도 없다. 다만 벡터양이기 때문에 방향만 달라질 따름이다. 사실 스핀은 근본적으로 양자역학적인 성질이기 때문에 드러나는 방식이 (고전역학과는) 전혀 다르다.” 한마디로 스핀은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없다는 뜻인데 그 옆에 물리학자들이 쭈그리고 팽이 보는 사진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양자역학도 결국에 물리학자들의 고뇌의 산물이다. 1920년대 초 아름다운 코펜하겐 거리를 정처없이 거닐던 파울리에게 친구가 건넨 말은 “자네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걸”이다. 이렇게 인간적 행복을 반납하고 발견한 것이 파울리의 배타 원리였다. 배타 원리가 나오자 원자 속 전자가 배치되는 모양이 극적으로 설명되었다. 세상의 물질들이 왜 그런 화학적 성질을 갖는지, 우리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이 세상이 생기게 된 까닭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배타 원리가 나타났을 때 모든 사람이 구원받은 느낌이었다.” 보어의 원자모형과 파울리의 배타 원리, 그다음 스핀으로 이어지는 퍼즐 맞추기는 마법에 홀린 듯 흘러간다.

디랙의 방정식 이야기가 나오면 그 마법은 전율로 바뀐다. 디랙이 전자에 대한 양자역학의 방정식을 상대성 이론에 맞도록 만들자, 스핀과 반입자가 저절로 나타난다. 방정식을 만든 디랙조차 이해하지 못한 입자와 개념이 현실로 튀어나왔다. 물리학 이론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는 드라마 같은 장면은 계속 연출된다. 몇년도에, 수십년 후에 물리학자들이 예측했던 입자가 발견된다는 식으로. 이것이 웬만큼 읽어서는 어디 가서 아는 척하기도 힘든 양자역학 책을 붙들고 있는 이유다.

과학적 탐구의 과정이 아름답다! 이 책에서 “정말 보이고 싶었던 것은 물리학 연구의 기쁨과 아름다움이었던 것 같다.” 이강영이 이렇게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스핀>은 책을 덮는 순간, 우리를 충만한 감정에 휩싸이게 한다. 테니스 초심자가 챔피언하고 멋진 시합을 하는 것처럼 양자역학이 가뿐하고 친밀하게 다가올 것이다.

정인경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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