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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과학적 사고의 본질은 비판과 저항이다

등록 2018-03-01 19:13수정 2018-03-01 19:43

정인경의 과학 읽기

첫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희정 옮김/푸른지식(2017)

과학은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이오니아 해변에서 시작되었다.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기 200년 전에 자연철학자들이 등장했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엠페도클레스, 아낙시고라스, 데모크리토스 등이다. 이 중에서 과학의 시조로 꼽히는 인물은 단연 탈레스다. 그는 우주의 근원 물질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물’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과학사에서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의 제자로 소개되는 존재감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카를로 로벨리는 탈레스를 밀어내고 <첫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양자중력 이론을 연구하는 이론 물리학자가 보았을 때, 과학의 시조는 아낙시만드로스여야 한다는 것이다. 왜? 궁금할 수밖에 없는데 힌트는 책의 부제 ‘과학적 사고의 탄생’에 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였다.

로벨리는 과학적 사고를 이렇게 설명한다. “과학의 힘은 확실성이 아니라 우리의 무지가 어디까지인지를 날카롭게 인식하는 데서 온다. 이러한 인식이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하고, 계속해서 배워나갈 수 있도록 힘을 준다.” “과학적 사고는 세계를 비판하고, 전복하고 끊임없이 재발견하는 힘이 있다.” 이러한 과학적 사고가 무엇인지 최초로 보여준 이가 바로 아낙시만드로스였다는 것이다.

탈레스보다 8살 손아래였던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 이론을 비판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먼저 우주의 근본물질이 물이 될 수 없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탈레스 말대로 모든 물질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면 불이나 열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왜냐면 물은 불을 생성하지 않고 제거하기 때문이다.” 굉장히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물은 불을 꺼버리고, 불은 물을 증발시킨다. 물과 불이 이렇게 공존하고 있는데 물만을 우주의 근본 물질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고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아페이론(apeiron, 무한)’을 들고 나왔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과학 개념이었다. 아페이론은 소위 말하는 ‘원소’가 아니다. 지금까지 언급된 그 어떤 물질과도 다르며 온 세상에 끝없이 퍼져 있는 것이다. 모든 만물은 이로부터 탄생하여, 이것으로 되돌아간다. 서로 상반되는 물질들이 그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 데모크리토스의 진공이 아페이론에서 영감을 얻어서 나왔다고 한다.

또한 아낙시만드로스는 자신의 아페이론으로 탈레스의 우주모델에서 ‘땅을 떠받치는 바다’를 제거했다. 탈레스는 지구가 바닷물 위에 떠있다고 했는데 아낙시만드로스는 아페이론이라는 텅빈 공간 속에 지구가 있다고 상상했다. 무언가 떠받치지 않아도 이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로벨리는 이렇게 아낙시만드로스를 통해 과학적 사고는 비판, 저항, 도전, 혁명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고대 그리스 과학이라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꺼낸 이유는 과학의 초심을 상기하기 위해서였다. 수천년 동안 인류의 사고를 지배했던 신화와 종교에서 벗어났던 과정은 결코 자연스럽거나 순응적이지 않았다. 고대 자연철학자들은 의심하고 비판하고, 끊임없이 재발견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나갔다. 과학적, 합리적 사고가 시작된 곳에서 민주주의가 탄생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인경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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