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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우리는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민중이다

등록 2018-03-29 20:46수정 2018-03-29 20:54

정인경의 과학 읽기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이정모 지음/바틀비(2018)

과학책을 대하는 우리의 이중적인 태도가 있다. 과학책이 어려우면 어려워서 피하고, 쉬우면 만만하게 생각하고 안 읽는다. 왜 이러는 걸까? 일종의 허위와 가식인데 아마 과학이 삶에 녹아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근대사에서 과학기술은 도입된 지 100년밖에 되지 않았다. 근대화 과정에 과학은 오랫동안 ‘신화’이거나 ‘도구’였다. 과학 그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국가나 기업의 성공 신화를 위한 것이었다. 우리 삶에서 과학의 자리는 없었다. 그런데 과학을 삶의 문제로 받아들이려면 넘어서야 할 단계가 있다. 과학이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앎’이 되려면 스스로 깨우치는 단계가 필요하다. 과학이 삶에서 필수적이고 중요한 지식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과학은 삶의 태도다.” 서울시립과학관의 이정모 관장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서양 과학을 수입해서 배우면서 지금껏 과학과 삶을 연결시켜 생각하지 못했다. 예컨대 다윈의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이라면 지구 나이는 6000년일 수 없다. 창조과학을 믿는 장관 후보자를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과학을 책 속의 지식으로만 취급하고, 삶에서 겉도는 상황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그의 책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은 이렇게 정치, 사회, 문화, 의식주 등등에서 잘못된 사고방식을 통쾌하게 꼬집는다. 이정모의 글에는 신화와 도구, 허위, 가식과 같은 겉치레가 없다. “과학은 신화를 공고히 하는 게 아니라 신화를 깨는 데 봉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을 통해 우리 사회가 정의롭고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 곳곳에는 ‘실패’가 자주 나온다. 과학자는 실패하는 사람들이다. 과학관은 실패하는 곳이다. 이렇게 실패를 강조하는 것은 우리 삶에서 실패의 소중함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스스로 의심하고 질문하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그래야 자기 것이 된다. 실패 없이는 진정한 성취도 없다. 과학관에서 이뤄지는 교육이나 과학의 대중화도 마찬가지다. 어렵더라도 과학의 본질에 도전하고 새로운 질문을 멈춰서는 안 된다.

과학이 삶의 태도이니, 삶에서 정치를 빼놓을 수 없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은 사회적 공공성을 향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학자에게는 자유로운 과학 연구를 위해서 정치적으로 적극 나설 의무가 있다. 과학자는 어렵게 얻는 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똑똑히 밝힐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런 멋진 말을 아인슈타인이 했다는데 이정모도 그에 못지않다.

“4대강 사업을 하고 나면 강이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 아니다. 알았다. 모른 척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돈을 벌고 싶었고 그 욕망에 충실했으며 권력자와 뜻이 맞았다.” “이명박 정부가 이런 짓을 하는 게 가능했던 이유에는 과학자들의 적극적인 부역이 한몫했다.” 이렇게 여느 과학책에서는 볼 수 없는 올곧은 정치적 신념을 소신껏 밝히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아주 천천히 아껴가면서 읽었다. 상식을 날려버리는 반전과 묵직한 통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느꼈다.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메밀꽃처럼 절박하게 과학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있기에.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은 이제 과학이라고, “우리는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민중”이라고 외치고 있기에.

정인경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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