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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하면 대프리카? 여름 밤 잠 못 이루는 도시는 따로 있다

등록 2018-07-27 09:29수정 2018-07-27 11:01

김범준의 인간관계의 물리학
⑨ 열대야

서울 지역의 열대야 발생일수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15일 이상 열대야가 있었던 해는 1970년대에서 1993년까지 20여 년간 단 한 번도 없었는데, 1994년 이후 2017년까지의 24년 동안에는 모두 여덟 해가 있다. 1990년대 이후 서울은 확실히 더 더워졌다.
이제 바야흐로 열대야의 계절이다. 우리나라 여름은 정말 덥다. 무더운 여름날에는 자꾸 주변 사람에게 짜증을 부리게 된다. 이럴 땐 시원한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진 곳에서 함께 더위를 피하는 것이 인간관계에 좋다. 사정이 이러니, 에어컨을 발명한 사람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었어야 마땅했다는 재밌는 얘기도 들었다. 여름날 따가운 햇볕 아래에 서면, 빛은 시원한 바다의 물결 같은 파동일 리 없어서, 빛알(광자)이라는 입자로 이루어져 있음에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엉뚱한 유사 과학적 농담도 있다. 빛의 광양자설을, 얼굴을 콕콕 찌르는 따가운 느낌으로 직접 몸으로 확인할 수 있다나 뭐라나.

무더운 여름밤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사람이 많다. 사람이 잠들기 적절한 온도보다 실내 기온이 높기 때문이다. 일 년에 며칠이나 무더위로 밤잠을 설치는지를 측정하기도 한다. 바로 열대야의 날 수다. 하루 24시간 중의 최저기온이 25도보다 높은 날을 열대야로 정의한 기존 기준을 우리나라 기상청은 2009년에 개정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열대야를,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 사이의 최저기온이 25도를 넘은 날로 정의한다.

전국 곳곳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지고 열대야 현상이 발생하는 가운데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전국 곳곳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지고 열대야 현상이 발생하는 가운데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그림 1. 1980년부터 2017년까지의 서울지역의 연간 열대야 발생일수와 발생 시기. 15일에 해당하는 기준선과 비교하면 1994년 전과 이후가 확연히 다르다. 과거에는 열대야가 단 하루도 없던 해도 드물지 않았다(1980, 1987, 1993년). 2000년대 들어 가장 시원했던 여름밤은 2003년이었다. 그해 열대야는 딱 하루 발생했다. 서울의 열대야는 빨라야 7월10일 전후에 시작해 8월말쯤에 대개 끝난다. 1997년 이후에는 간혹 9월초까지도 열대야가 지속되기도 했다.
90년대 서울은 더 더워졌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기온을 측정하는 기상 관측소는 모두 102군데다. 과거에는 이보다 적었다. 이 글에서 분석한 기온 자료는 기상청의 기상자료개방포털(data.kma.go.kr)에서 내려받았다. 올해 여름도 무척 덥지만, 1970년대 이후 가장 더운 여름은 1994년이다. 그 해 서울의 열대야는 모두 36일이었다. 다음 기록은 2016년의 32일이다. 서울 지역의 열대야 발생일수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15일 이상 열대야가 있었던 해는 1970년대에서 1993년까지 20여 년간 단 한 번도 없었는데, 1994년 이후 2017년까지의 24년 동안에는 모두 여덟 해가 있다. 1990년대 이후 서울은 확실히 더 더워졌다. <그림 1>에 내려받은 자료를 이용해 계산한 1980년~2017년 매년 서울 지역 열대야 발생일수와 함께, 열대야가 언제 시작해 언제 끝났는지도 그래프로 그려보았다. 1994년 이후 서울의 열대야는 발생일수뿐 아니라, 지속 기간도 이전보다 늘었다.

열대야를 판정하는 기준이 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전날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27도의 온도를 유지해 밤새 잠을 설쳤는데, 만약 아침 8시 온도가 24도로 측정되면, 이날은 열대야로 판정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우리 연구그룹의 이대경, 이송섭 연구원과 의논해 불면의 밤이 얼마나 길었는지를 달리 재보기로 했다. 현재 열대야의 판정기준은 전날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인데, 여름날 6시에 잠자리에 드는 사람은 없다. 편의상, 밤 9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 사이에 그 안에 25도를 넘긴 시간이 얼마나 긴지 재보자는 아이디어다. 이를 “열대야”라는 널리 쓰이는 용어에 빗대어 “열대시”로 부르기로 했다. 사람들 대부분은 이 12시간 안에 잠을 자니, 이 시간 중 얼마나 오랜 시간이 열대시인지를 퍼센트(%)로 재 보기로 한 거다. 간혹 늦은 봄이나 초가을에도 짧은 시간 25도를 넘길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날 밤새 잠을 설치지는 않는다. <그림 1>을 감안해 열대시 계산을 7월1일에서 8월31일로 제한했다. <그림 2>에 서울지역에서 열대시의 길이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려보았다. 1994년의 서울 열대시는 70% 정도였다. 7, 8월 잠들 시간인데도 너무 더워 잠을 못 이룬 시간이 전체의 무려 70%였다는 뜻이다. 서울에서 작년의 열대시는 50% 정도였다. 7, 8월 밤 시간 중 절반은 잠들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그림 2. 7, 8월 서울의 열대시 발생비율. 사람들이 대개 잠자리에 드는 밤부터 아침까지의 12시간 동안 기온이 25도 이상이라 잠들기 어려운 시간의 비율을 퍼센트로 표시했다.
그림 3. 1980년대 이후의 우리나라의 열대시 분포. 1980년~1993년 사이의 분포(맨 왼쪽)와 최근인 2012년~2017년 사이의 분포(맨 오른쪽)를 비교하면 우리나라 전역에서 열대시가 확연히 증가했음을 볼 수 있다. 가장 더웠던 1994년에는 전국 대부분에서 열대시가 무척 길었다. 특히 제주도는 열대시 비율이 90%여서 7, 8월 여름 내내 잠들기 어려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에는 관심을 전국으로 넓혀 보았다. 일부 관측소의 기온 자료는 매시간 측정된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새벽 1시의 기온은 있지만 2시와 3시의 기온은 누락되어, 이어지는 데이터가 새벽 4시의 기온이라고 해보자. 이처럼 데이터가 중간에 빠져 있는 경우에는 새벽 1시에서 새벽 4시까지 기온이 곧은 선 모양(선형)으로 변했다고 가정해서 새벽 2시와 새벽 3시의 기온을 추정하는 방식(선형 사이 채움이라 부름)을 적용했다. 각 관측소 데이터를 이용해 매년 열대시가 몇 %였는지를 추정하고, 이를 여러 해에 걸쳐 평균을 구해 지도 위에 표현한 것이 <그림 3>이다. 열대시 공간 데이터를 부드러운 다항 함수로 어림해 색이 부드럽게 변하도록 그렸다. 진한 빨간색인 곳이 열대시가 길었던 곳이고, 진한 파란색인 곳은 열대시가 짧았던 곳이다. 1980년 이후 어떻게 열대시의 전국 분포가 변했는지 보고자, 1980~1993년(첫 번째 그림), 2007년~2011년(세 번째 그림), 그리고 2012년~2017년(네 번째 그림)의 연평균 열대시 분포를 지도 위에 표시했다. 1994년 기록적인 폭염이 발생했을 때의 열대시 분포 그림(두 번째)은 따로 넣었다. 다른 그림과 비교를 쉽게 하기 위해 70% 이상은 모두 같은 색으로 표시했지만, 1994년 제주도의 열대시는 무려 90%였다.

고체도시가 더 덥다

최근의 열대시 분포 지도를 보면, 서울, 인천 지역이 같은 위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열대시가 상대적으로 더 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대도시의 기온은 주변의 기온보다 높을 때가 많다. 이를 일컫는 용어가 바로 ‘도시 열섬’(urban heat island) 효과다. 도시를 이루는 빌딩 등의 인공물이 얼마나 많은지, 공원 등의 녹지는 얼마나 넓은지에 따라 열섬 효과의 정도가 달라진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의 한 물리학 논문에서는 여러 도시의 열섬 효과의 정도가 단순히 빌딩이 차지하는 면적뿐 아니라, 빌딩의 분포 방식에 따라서도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이기도 했다.[1] 논문에서는 규칙적인 결정 구조를 가진 고체와 같은 방식으로 빌딩이 배열된 도시를 “고체 도시”로,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들이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나열된 것처럼 빌딩이 배열된 도시를 “액체 도시”로 불렀는데, 액체 도시보다 고체 도시가 열섬 효과가 커 더 덥다는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다.

<그림 3>에 세 번째, 네 번째로 넣은 2007년 이후의 열대시 분포 지도를 보면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열대시가 늘었지만, 흥미롭게도 줄어든 지역도 있다. <그림 4>에 각 지역의 열대시가 얼마나 늘고 줄었는지를 지도 위에 표시해 보았다. 2012년~2017년 사이의 연평균 열대시와 2007년~2011년 사이의 연평균 열대시의 차이를 구하고, 이를 색으로 표시했다. 강원도 지역에는 무려 이 기간 동안 35%나 증가한 지역이 있다. 강원도의 내륙 지방도 점점 더 열대야로 고생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오늘 살펴본 자료만으로 그 이유를 짐작하긴 어렵지만, 전남과 경남의 남해안 지역 일부에서는 흥미롭게도 이 기간 동안 열대시가 20%나 줄어들기도 했다. 이유가 궁금하다.

과거 기상기록을 보면 우리나라 역대 최고기온 신기록은 1942년 대구의 40.0도였다. 요즘 무더운 대구 지역을 기온이 높은 적도 아프리카 지역에 빗대어 “대프리카”로 부른다고도 한다. 하지만, 열대시 기준으로는 대구가 1등이 아니다. 1등인 제주도의 2012년~2017년 연평균 열대시는 무려 70%였다. 다음으로 열대시가 길었던 곳은 광주, 포항, 청주, 거제, 대구의 순서다. 낮 기온을 기준으로 하면 대프리카지만, 여름 밤 잠 못 이루는 열대시 기준 부동의 1위는 제주도다. 낮에는 대프리카, 밤에는 제프리카다.

각주

1) https://doi.org/10.1103/PhysRevLett.120.108701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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