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베트남-미국, 종전 24년만에 ‘그땐 왜?’

등록 2018-09-20 21:34수정 2018-09-20 22:01

적과의 대화
히가시 다이사쿠 지음, 서각수 옮김/원더박스·1만5000원

1997년 6월20일 베트남 하노이에선 역사에 기록될 매우 ‘이례적인’ 만남이 열렸다. 360만명의 베트남인과 5만8000명 미국인의 목숨을 앗아간 베트남 전쟁(1955~1973)의 양쪽 당사자들이 ‘그때 우린 왜 전쟁을 벌였을까’란 주제를 놓고 사흘에 걸친 대화를 나눴다. 태고로부터 인류사엔 수많은 전쟁과 학살이 있었지만, 사건 당사자들이 수십년 만에 다시 만나 당시 그들이 내린 판단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미국쪽 대표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국방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맥나마라, 베트남 대표는 전쟁 당시 베트남 외교부의 차관이었던 응우옌꼬탁이었다.

이 모임이 열리는 추동력이 된 것은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를 이끄는 미국의 국방장관으로 이 끔찍한 전쟁을 막지 못한 맥나마라의 ‘회한’이었다. 그는 1995년 4월 출판된 <회고록-베트남의 비극과 교훈>에서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범한 과오였다”고 분명히 인정했다. 이후 그는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베트남측 지도자들과 직접 마주 앉아 대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고, 1995년 미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룬 베트남이 이를 받아들이며 세기의 대화가 실현됐다.

그래서 전쟁은 왜 일어난 것일까. 상대에 대한 ‘무지’와 ‘공포’ 때문이었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아시아에 대해 철저히 ‘무지’했었다고 선선히 인정한다. 당시 미 국무부에서 베트남과 평화협상을 진행했던 체스터 쿠퍼는 “미국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베트남은 안중에도 없었다”고 말했다. 맥나마라도 당시 미국 정부가 “남베트남을 내주면 동남아시아 전체를 공산주의자들에게 내주게 된다”는 ‘도미노 이론’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 돌이켜 보면, 베트남인들은 소련·중국의 앞잡이가 돼 동남아 전체를 공산화하려 했던 게 아니라 외세로부터 독립된 통일 국가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사태를 키운 또다른 변수는 ‘오해’였다. 베트남 전쟁이 본격 확전되기 전인 1965년 2월6일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 문제의 향후 처리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맥조지 번디 대통령 보좌관을 현지에 파견한다. 북베트남군은 다음날 미군 병사 8명의 목숨을 앗아간 남베트남 쁠래이꾸 공군기지 공격으로 그를 맞았다. 미국은 이 공격을 비열한 도발로 받아들이고 대대적인 보복 공격에 돌입하며 본격적인 수렁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베트남 당국자들은 번디가 베트남에 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고, 공격 자체도 하노이의 전략적 결정이 아닌 현지 사령관의 독자 판단에 따라 이뤄진 것이었다.

그러나 양쪽은 끝내 완벽한 의견의 일치에 이르진 못한다. 전쟁의 원인을 ‘양쪽 모두’의 잘못된 정세 판단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미국과 달리, 베트남인들은 “전쟁은 언제나 외국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쩐꽝꼬·당시 외교부 대미정책국장), “미국은 우리를 국가가 아닌 냉전이라는 게임의 말로밖에 보지 않았다”(다오후이응옥·당시 북베트남 외교부)고 답하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원인을 탐구하려는 미국과 달리 베트남인들은 미국이 저지른 도의적·윤리적 책임을 추궁한다.

미국은 과오를 인정하지만, 끝내 ‘반성’엔 이르지 못한다. 압박과 공격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미국의 태도는 베트남의 비극에서 반세기가 흐른 오늘까지도 본질적으로 달라지진 않았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피디로 이 놀라운 대화 녹취록을 입수해 텔레비전용 다큐를 만든 저자가 방송에 살을 붙여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책의 제목은 여전히 ‘적과의 대화’이다. 둘은 끝내, ‘동지’가 되진 못한다.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