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MBC) ‘뉴스데스크'가 지난달 28일 보도한 버닝썬 직원들의 폭행 장면을 담은 시시티비(CCTV) 장면. 문화방송 뉴스데스크 갈무리
[책과 생각] 이민경의 유연하고 단단하게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사건이 되지 못하는 폭력이 있다. 클럽에서 여성이 겪는 일도 여기에 들어간다. 춤을 추는 여성을 성추행하는 남성, 강간을 할 목적으로 여성에게 약을 탄 술을 건네는 남성, 강간을 할 목적으로 취한 여성을 끌고 나가는 남성, 클럽에서 강간을 할 때 사용할 요량으로 온라인에서 강간 약물을 구입하고 판매하는 남성, 술에 취한 여성을 강간할 방법을 온라인에서 모의하고 후기를 공유하는 남성, 여성을 강간하고 그 장면을 촬영한 뒤 온라인에 유통하여 수익을 벌어들이는 남성, 남성들.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제지되지 않는 부정의가 있다. 클럽에서 보안을 목적으로 고용한 보안요원이 하는 일에 여성을 강간하려는 남성을 막는 일은 들어가지 않는다. 강간은 보안을 깨뜨리지 않으므로. 경찰은 때로 단속의 대상인 클럽에서 돈을 받고 협조의 대상이 된다. 상납금을 받은 경찰은 나라가 아닌 클럽을 지킨다. 경찰은 남성이 여성을 강간하기 위하여 클럽 내부에서 유통하는 마약을 단속하지 않는다. 경찰이 뒷돈을 받은 뒤라면 클럽은 단속이 아닌 협조할 대상이므로.
폭력은 언제 사건이 되는가. 사건은 언제 주목을 얻는가. 여기엔 대충의 원칙과 약간의 우연이 필요하다. 약자에 대한 폭력은 질서의 일부다. 질서가 유지될 때보다는 질서에 균열이 갈 때 사건이 될 공산이 크다. 최근 가수 빅뱅의 멤버 승리가 운영하는 클럽 버닝썬에 이목이 집중된 까닭은, 클럽 관계자인 남성이 여성을 강간하려고 했기 때문도 아니고 경찰이 그런 남성의 편에 섰다는 의심을 받기 때문도 아니다. 강간하는 남성과 그를 지키는 남성은 편재한다. 어떤 여성을 강간하려는 남성을 막으려던 남성이 강간을 시도한 남성과 공권력에 의해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강간하는 남성을 막으려는 남성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항시 일어나던 강간에 남성이 폭행을 당하는 일이 합쳐지며 ‘버닝썬’은 드디어 사건의 무대가 되었다.
사건이 주목을 얻으면 관련된 모든 것이 새삼스러워질 기회가 생긴다. 클럽에 갔다는 이유로 딸과 여자친구에게 성적인 모욕감을 안기고, 여성의 클럽 출입 여부를 통제하고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안전과 걱정을 빌미 삼은 남성들의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 반대로 남성 자신이 클럽에 드나들 때에는 클럽을 만든 남성들과 지키는 남성들의 비호 아래 여성에게 저지르는 온갖 성폭력, 폭력의 민낯을 유통해 세워진 공고한 웹하드 카르텔. 이 모든 일이 일어나던 클럽에 폭행사건을 계기로 새삼스러움이라는 이름의 조명이 비추어졌다고 안도하기 이전에, 이때까지는 그저 유지되고 옹호되고 묵인되었던 그 모든 일들은 ‘버닝썬 폭행사건’과는 달리 ‘버닝썬 강간사건’으로 불릴 수 없었음을 말해야 한다. 당장 오늘 밤에도 강간과 강간 시도가 숱하게 일어날 다른 모든 클럽의 이름을 열거해야 한다.
이 사건이 클럽이라는 공간을 다시 보게 했으니 폭력을 당한 자가 남성이 아니었더라면 조명이 비추어지지 않았을 무대에서 그간 일어난 폭력들도 정당한 무게로 다루어지려는가. 클럽에서의 강간은 사건화될 수 없는 이 사회에서, 원칙과 우연이 맞물려 주목받는 사건이 된 ‘버닝썬 폭행사건’으로부터 주시해야만 할 것은 여기 있다.
작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