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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좌절은 백성의 고통

등록 2019-09-27 06:00수정 2019-09-27 20:28

강명관의 고금유사
2016년 12월3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6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6년 12월3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6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519년 11월15일 한밤중이었다. 중종은 홍경주(洪景舟)·남곤(南袞)·김전(金詮)·정광필(鄭光弼) 등을 편전(便殿)으로 불렀다. 이어 이장곤(李長坤)과 안당(安?)도 부름을 받고 도착했다. 원래 왕이 신하를 부를 때면 승정원을 거치지만, 이날은 그런 절차가 없었다. 중종이 이들을 부른 것은 조광조(趙光祖) 등 뒷날 ‘기묘사림’(己卯士林)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한밤중에 들이닥친 사람으로 대궐은 소란스러웠다. 그때 승정원에 숙직하고 있던 승지 윤자임(尹自任) 등이 편전으로 달려가자 등불로 사방이 휘황하였다. 중종을 직접 만나기 위해 승전색(承傳色)에게 전해 줄 것을 청했다. 이윽고 승전색 신순강(申順强)이 나와서 윤자임의 말을 무시하고, 그 자리에 있던 병조참지(兵曹參知) 성운(成雲)에게 “너를 승지로 삼았으니 즉시 들어가 전교(傳敎)를 들으라”고 하였다. 성운 역시 홍경주 등과 함께 중종의 부름을 받았던 사람이다.

졸지에 승지가 된 성운은 안으로 들어가 중종으로부터 쪽지 하나를 받고 나왔다. 쪽지에는 그날 밤 승정원과 홍문관에 숙직하고 있던 윤자임과 기준(奇遵) 등 7명을 의금부 옥에 가두라는 명령이 적혀 있었다. 이어 중종은 재차 의금부에 명을 내려 대사헌 조광조(趙光祖) 등 9명을 체포해 옥에 가두게 하였다. 조광조는 기묘사림의 상징적 인물이었고 정치개혁의 첨병이었다. 1515년 6월8일 그는 조지서(造紙署) 사지(司紙)에 임명되어 관로(官路)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것은 벼슬에 들어가는 문이었을 뿐이다. 같은 해 11월20일 사간원 정언(正言)에 임명되고부터 조광조는 본격적으로 정치개혁의 첨단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 뒤 보수 기득권 세력의 협잡으로 개혁의 실험은 봄날의 꿈처럼 허망하게 끝장이 나고 말았다.

조광조 등이 실각한 해는 기묘년이었다. 그래서 이 정치적 사건을 ‘기묘사화’(己卯士禍)라 하고 당시 실각한 조광조 등 개혁세력을 ‘기묘사림’이라 한다. 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운 사람이면 다 아는 이야기다. 기묘사림이 주창했던 개혁의 내용과 그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기묘사림이 제거된 뒤 사관(史官)의 평가를 보자.

“조광조 등이 힘을 쓰고 있을 때는 탄핵과 논박(論駁)이 크게 이루어졌으므로, 조정의 재상들이 주현(州縣)에 요구할 수 없었고, 주현의 관원들도 역시 각자 자신을 단속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침탈당하는 걱정이 없었고, 조정에도 뇌물을 주고받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때에 와서 사류(士類)가 화를 당하자 청렴한 절조가 따라서 무너졌고, 조정은 더러운 재물을 탐내게 되었고 군현(郡縣)도 그 풍조에 휩쓸려 도무지 법도라고는 없었다.”

15년(1520) 10월16일 <중종실록>에 실린 사관의 평가다. 개혁이 좌절된 이후의 타락한 관료사회의 풍경이다. 관료의 타락은 결국 백성에 대한 침탈, 곧 무제한적인 착취로 귀결되었다. 사림 개혁의 좌절은 고스란히 백성의 고통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쇠는 달구어졌을 때 때려야 하는 법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같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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