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꿈에서 깨어난다. 정말 이상한 꿈이었어, 하고 당신은 생각한다. 그 이상한 꿈의 불길한 기운을 떨쳐내려고 당신은 짐짓 쾌활한 표정을 지으며 배우자에게 말한다. 저기, 내가 진짜 이상한 꿈을 꿨다? 꿈속에서 말이야, 이제 2020년이 됐으니까 오늘 중에…. 그런데 당신을 바라보는 배우자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배우자가 말한다. 그 꿈 나도 꿨어.
응? 아니, 아니, 내가 진짜 이상한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어떤 천사인지 악마인지가 나와서 내가 사는 세상이….
그 꿈 나도 꿨다고. 그거 꿈이 아닌 거 같아. 배우자가 말한다. 그의 표정은 심각하다. 약간 넋 나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제 당신 표정도 그러하리라.
그게… 그러면 진짜라고? 그 얘기가? 다? 당신은 말을 더듬는다.
그런 거 같아. 배우자는 입술을 씹는다.
그러면… 뭘 해야 하지? 당신이 묻는다.
일단 우리가 들은 걸 비교해 보자. 정말 똑같은 내용이었는지 확인해보자. 배우자가 제안한다.
“꿈에 모건 프리먼을 닮은
어떤 천사인지 악마인지가 나와서…”
“유원지 도우미? 그 꿈 나도 꿨어”
당신과 배우자는 기억나는 내용을 두서없이 떠든다. 그리고 점점 더 서로의 말이 정확하게 일치하고, 간밤의 기억은 꿈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생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건 프리먼을 닮은 남자가 물 위를 걸어와서 모건 프리먼 전담 성우 톤으로 “저를 천사라고 생각하셔도 좋고 악마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시작이었다. 모건 프리먼을 닮은 남자는 “실은 저는 유원지 도우미입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그는 당신들이 사는 세상이 가상현실 유원지라고 설명한다. <매트릭스>라고 영화도 있었잖습니까, 그거하고 비슷합니다. <매트릭스>와 다른 점은, 이 유원지는 당신을 착취하지 않으며, 당신이 자발적으로 여기에 들어왔다는 점입니다. 밖으로 나갈 때 당신이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몇 구절을 흥얼거리게 만드는 게 이 유원지의 목표죠. 사랑도 했고 웃고 울기도 했는데 하여튼 충만한 삶이었다고.
이 유원지의 물리법칙은 정교하다. 당신이 온 바깥세계의 물리법칙을 그대로 구현했다. 철학적으로 볼 때 두 세계는 모두 진짜이고 실재한다. 다만 당신을 포함한 방문객에게는 있는 바깥세계―‘내세’라고 불러도 좋다―가 다른 75억 명에게는 없을 따름이다. 그 75억 명 역시 하나하나 당신만큼이나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결단하고 고통 받는 존재들이다. 인간뿐 아니라 소 10억 마리, 돼지 10억 마리, 닭 200억 마리도 감각이 있고 고통을 느낀다.
사실 이곳은 가상현실 ‘지구’ 유원지
우리는 선택받은 2천명 중 하나
그가 찾아온 이유는 ‘만족도 조사
현재 유원지의 방문객은 꼭 2000명이다. 그 방문객들은 모두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 살고 있다. 당연하다. 고통을 받기 위해 유원지에 오는 사람은 없다. 당신은 다섯 살의 나이로 지구에 왔다.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이 없는 건 그래서다. 기적의 나라 한국에 온 건 당신의 선택이었다. ‘점점 나아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감각이 유년기에 중요하리라고 본 거다. 방문객들은 자신이 주로 지낼 시간대로 대개 20세기 말이나 21세기 초를 택하고 당신도 그랬다. 그 즈음이 문명과 자연의 조화가 적당하다는 평가다.
유원지 운영자들은 대체로 방문객들의 삶에 간여하지 않지만 아주 큰 불행은 막아준다. 복권에 당첨되게 해달라는 소원은 들어주지 않지만 암을 이겨내게 해달라는 기도는 들어주는 식이다. 당신은 그런 보살핌을 받아 왔다. 그 점만 제외한다면 당신이 이룬 건 모두 당신이 이룬 거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그런 자부심을 안전하게 느끼러 이 유원지에 오는 거다. 유원지 운영자들은 약간의 불운과 역경은 일부러 제거하지 않는다. 방문객들이 행복과 성취감을 더 맛깔나게 느낄 수 있도록.
그래도 혹시 몰라서 유원지 운영자들은 20년마다 한 번씩, 1월1일에 방문객들에게 만족도 조사를 벌인다. 유원지의 현 상태에 만족하느냐고. 아니라고 답하는 방문객이 많으면 그들의 기억을 지우고 유원지의 상태를 20년 전으로 되돌린다. 당신은 그렇게 2000~2019년까지 20년이라는 시간을 세 번 겪었다.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찌꺼기 기억들 때문에 데자뷔 현상을 몇 번 겪기도 했다. 나중에 당신이 바깥세상으로 돌아갈 때에는 그 기억들도 함께 주어질 것이다. DVD 부록영상처럼.
첫 번째 2000~2019년에 당신은 지구의 인구가 너무 늘어나 화성으로 이민을 갔는데 그곳 생활은 몹시 불편했다. 그렇다고 지구로 돌아오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맞은 2020년 1월1일, 세상을 되돌리자는 데 한 표를 던졌다. 두 번째 2000~2019년에는 로봇들이 집단 반란을 일으켰다. 어떤 이들에게는 인류와 로봇의 전쟁이 흥미진진했지만 당신을 비롯한 방문객 대부분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오늘이 세 번째 2020년 1월1일이야. 오늘 중에 표를 행사하랬어. 그냥 눈을 감고 ‘승인하겠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면 된다고 하던데. 당신이 말한다.
내일이 2000년 1월2일이 되건, 아니면 2020년 1월2일이 되건, 오늘 일은 앞으로 20년 동안은 기억이 나지 않을 거라고 했고. 배우자가 덧붙인다.
지금껏 살아왔던 세상이 시뮬레이션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의외로 충격이 크지 않다. 감정이 마비된 듯하다. 어쩌면 진실이 너무 충격적이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 역시 진짜 세계’라는 말에 설득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충격을 함께 나눌 배우자가 옆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유원지 도우미들이 당신의 뇌에 어떤 충격완화장치를 심어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신과 배우자는 사소하다면 사소한 우연의 일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방문객은 75억 명 중 2000명에 불과한데, 그중 두 사람이 만나서 동거할 확률 같은 것. 그런데 모건 프리먼을 닮은 유원지 도우미는 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방문객이 다른 방문객과 사랑에 빠지는 사례가 그렇게 희귀한 것은 아니라고. 방문객들은 무의식중에 ‘나는 이방인이다, 지구가 고향이 아닌 것 같다’고 느끼고, 다른 방문객들을 막연하게나마 알아보는 듯하다. 게다가 그들은 연령대가 비슷하고, 몇몇 선진국 도시에 모여 산다.
20년마다 한번씩 투표를 거쳐
‘2000년 1월1일’로 리셋해준다는데
농담 같지만 벌써 3번째란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배우자가 묻는다. 승인할 거야?
세계의 운명을 고민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세계의 운명과 자신이 그렇게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어서, 당신은 그저 입을 벌린다. 어, 그게….
당신은 그저 2000표 중 한 표를 행사할 뿐이며, 이게 세계의 존망을 결정지으라는 요구도 아니건만. 의제는 단순하다. 이대로 갈까요, 아니면 2000년부터 다시 시작할까요?
화성에서 일주일에 한 번 샤워하면서 저혈압에 시달리는 생활이나 살인 로봇들과 시가전을 벌이는 일상에 비하면 이번 세상은 꽤 살 만하지 않아? 난 괜찮은 거 같은데. 당신이 말하며 배우자의 눈치를 살핀다.
너무 섣불리 결론짓지는 말자. 오늘 자정까지는 시간이 있잖아? 한번 천천히 따져보자고. 배우자가 말한다. 그 역시 당신 눈치를 살피는 것 같다. 사실 요즘 그와 당신 사이는 예전 같지 않다. 이대로 가도 물론 좋지만, 2000년부터 다시 시작하는 걸 필사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쩌면 20년을 되돌린다 해도 당신은 운명처럼 그를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
얼얼하네, 얼얼해. 무슨 고약한 농담 같아. 당신과 배우자는 커피를 끓여 마신다.
지금 다른 1998명도 우리와 같은 꿈을 꿨단 말이지? 그리고 우리와 똑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말이지? 배우자가 묻는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2000년부터 어제까지 무슨 일들이 있었지?
그만하면 나쁘지 않았잖아? 게다가 다들 큰 불행은 없이 살고 있다고 했고. 2000년부터 다시 산다고 해도 이 정도 수준이 유지될 거라는 보장은 없잖아. 당신이 20년 사이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생각하며 말한다. 두 번째로 2020년 1월1일을 맞았을 때 당신은 방사능 마스크를 쓰고 인간 레지스탕스군의 지하 은신처에 숨어 있었다. 그때 2000년으로 되돌아가기를 주저 없이 선택하며 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화성에서 고생하는 게 이거보다는 낫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최근 20년 사이에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 적은 없었지, 우리는. 배우자가 말한다. 그 말이 암시하는 바를 당신은 곧 알아차린다. 남들은, 그런 생각을 한다. 그것은 지금 어떤 이들의 소원이기도 하다.
당신과 배우자는 오늘 중에 내려야 할 이 선택에 복잡한 윤리적 측면이 있음을 서서히 깨닫는다. 9.11 테러, 이라크전, 수단 내전, 동일본 대지진, 시리아 내전, 세월호, 비정규직, 공장식 축산, 그밖에 당신이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한 무수한 고문과 범죄와 차별들을 이미 일어난 일로, 어쩔 수 없는 일로 간주할 것인가?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의 불의, 타인의 고통을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화성에서 저혈압에 시달리거나
살인로봇과 싸우는 것보단 낫지만…
지금 이 세상, 이대로 가도 될까?
20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는데. 어쩌면 더 끔찍한 사건들이 터질지도 모르고. 배우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당신을 흘끔 쳐다본다. 당신도 어색하게 따라 웃는다. ‘우리 지금까지도 그런 문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았잖아?’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한다. 어제까지 그것이 당신들의 도덕적 책무가 아니었다면 오늘도 여전히 아닐 것이다.
유원지 도우미는 분명히 이 세상이 ‘우리한테’ 살기 좋은 곳이냐고 물은 건데. 배우자가 말한다.
그냥 좋은 세상과 우리한테 좋은 세상은 다른 건가? 당신이 말하고 웃는다. 다르다. 당신은 여태까지 그렇게 여기며 살아왔다. 그 두 세상이 제대로 충돌한 적이 없었을 뿐이다.
좀 생각을 해보자.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당신이 말하고 배우자가 끄덕인다. 한 줄기 위안이 되는 생각이 당신 뇌리를 스친다. 당신이 어느 쪽에 투표하건, 뭐라고 결론이 나건, 내일이면 당신은 이 모든 고민을 잊으리라는 사실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