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부모 최초 실태보고서] ㉻
부모 지지와 주거 안정 바탕으로 “오늘 아닌 미래를 꿈꿉니다”
“애가 애를 낳네” 눈총 대신 양육비·주거 ‘맞춤형 지원’해야
부모 지지와 주거 안정 바탕으로 “오늘 아닌 미래를 꿈꿉니다”
“애가 애를 낳네” 눈총 대신 양육비·주거 ‘맞춤형 지원’해야
한 10대 엄마와 아이의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닥치는 대로 일하며 가장 될 준비했지만… 다행히 두 사람은 삼중고 가운데 두가지 ‘고통’에서 운이 좋았다. 먼저 수영의 부모가 수영과 민지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절대 아이를 지우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형제들도 “너 때문에 삼촌이 됐다”고 투덜대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줬다. 조부모는 “명절 때 아기와 함께 오라”며 환영했다. 가족들은 형편이 어려운데도 산모에게 좋은 음식을 챙겨 오거나 생활용품을 전하며 젊은 부모를 응원했다. 이들에겐 주거 불안을 해소할 탈출구도 있었다. ‘청소년부모 실태조사 연구보고서’를 보면, 청소년부모의 51.1%(161명)는 현재 월세로 살고 있다. 하지만 10대 때부터 가족과 단절됐던 민지는 스무살이 되면서 엘에이치(LH) 전세임대주택에 지원할 자격을 얻었다. 7평(23㎡) 크기의 주거는, 넉넉하진 않아도 생계를 근근이 이어가는 이들 커플을 월세 걱정에서 해방시켜줬다. “주거 문제가 해결된 게 다행이었어요. 경제적으로 형편이 안 되는데 30만~40만원씩 월세까지 내야 하면 어려우니까요.” 수영이 말했다. 이런 상황이 민지의 출산 결심을 뒷받침했다. 남은 건 생계 문제. 어린 가장이 된 수영은 닥치는 대로 일을 구했다. “돈은 내가 어떻게든 벌 테니까 민지에겐 아이를 돌봐달라고 했어요. 제가 맞벌이 부모님과 시간을 같이 못 해 외로웠거든요. 제 아이에게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수영은 인력시장에 일감이 나오면 가리지 않고 찾아가 몸을 쓴다. 어떤 날은 택배 상하차 일을 하고, 어떤 날은 공장에서 물건 포장을 하거나 자동문을 조립했다. 주말에는 주방보조 일을 했다.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일할 때마다 수영의 손엔 적게는 하루 8만원, 많게는 14만원의 돈이 쥐어졌다. 다만 인력시장 일은 늘 불안정했다. 많이 갈 때는 일주일에 두세 건도 있었지만 일주일에 하루도 못 가는 날도 많았다. 한달 수입이 기껏해야 50만~60만원 수준인 까닭이다. 임신 이후 자주 불안을 호소하는 민지의 곁을 지키느라 일을 나가기 힘든 날도 많았다. 민지의 곁엔 오롯이 수영뿐이었다. 결국 수영도 민지처럼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다. 형편이 어려운 수영의 부모에게 부양능력이 없다는 사실도 인정받았다.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생계급여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생계급여는 국민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저선’이다. 출산을 앞둔 부부의 쾌적한 삶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생활비에 맞춰 식비마저 줄여야 했다. _________
밀착 지원으로 희망을 꿈꾸다 삼중고 외에도 젊은 부부에겐 하루하루가 도전의 연속이다. 7평 공간에선 곰팡이가 틈만 나면 피어오른다. 둘이서는 견뎌낼 만한 공간이지만 곧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아직까진 생계급여와 알바비로 살 수 있다”면서도 아이가 태어나면 급격하게 불어날 육아용품 비용이나 병원 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한 복잡한 행정 절차를 홀로 처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민지의 배가 불러올수록 두 사람의 걱정도 커져갔다. 그런데 수영 부부에게 다시금 행운이 찾아왔다. 지인의 소개로 청소년 미자립가정 지원 단체인 킹메이커를 알게 된 것이다. 킹메이커는 젊은 예비 부모를 위한 밀착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해 12월, 수영과 민지는 7평 임대주택을 떠나 킹메이커가 구해준 수도권의 한 빌라로 거처를 옮겼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단체에선 산모에게 필요한 물품이나 옷가지도 건넸다. 임신 시기에 맞는 정보를 메신저로 전해주고, 가계부를 쓰도록 경제교육도 해줬다. 민지는 처음으로 눈앞의 걱정을 덜어내고 아이를 키우는 일만 고민할 수 있게 됐다. “육아용품이 있어야 아이를 키우잖아요. 젖병하고 기저귀만 생각했는데 막상 출산하려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비용은 또 다들 어마어마하고. ‘어떡하지?’ 그 생각만 했는데 걱정이 사라졌어요.” 물질적인 도움도 크지만, 출산을 앞두고 막막했던 젊은 부모들에겐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힘이 되어주었다. “아이를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는 거 자체가 큰 위로가 됐어요.” 민지는 이들이 내민 도움의 손길 자체에 감사했다. “사람이 주는 마음이잖아요. 앞길이 막막했는데 희망이 보였어요.” 수영이 민지의 말에 공감하며 말했다. 문제는 이들에게 찾아왔던 ‘행운’이 연 1300명의 19살 이하 산모, 1만4600명의 24살 이하 산모(2018년 기준) 모두에게 찾아가진 않는다는 점이다. 민지와 수영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청소년부모에게 삼중고를 덜 수 있는 제도적 지원과 사회적 지지가 있다면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이 ‘행운’이 민간단체의 온정으로 그치지 않고 국가라는 울타리에서 제도화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민지와 수영은 킹메이커의 도움과 격려 속에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의지할 곳이 없었어요. 엇나가고 가출하면서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다니던 대학을 쉬고 있는 민지가 말하자, 수영이 “상담사가 되어 힘든 사람들 곁에서 함께 슬퍼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고 말을 받았다. 하지만 그전에 우선 두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이 있다. 배 속의 아이를 무사히 낳아 행복하게 키우는 것이다. “저는 이제 저한테 인생을 쓰기보단, 남은 인생을 가족에게 쓰고 싶어요. 저에 대한 욕심은 버릴 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열아홉살, 앳된 얼굴 예비 아빠의 목소리엔 흔들림이 없었다. 강재구 배지현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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