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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두박신과 재림예수

등록 2020-03-13 05:00수정 2020-03-13 17:49

[책과 생각] 강명관의 고금유사

세종 18년(1436)의 일이다. ‘두박신’(豆朴神)이란 희한한 이름의 신이 나타났다. <세종실록>의 주석에 의하면 ‘두박’은 ‘사람이 엎어져 넘어질 때 나는 소리’라고 한다. 모르기는 하지만, 사람이 넘어질 때 나는 소리, 예컨대 ‘꽈당!’ 뭐 이런 소리가 아닐까? ‘꽈당신’이라니 좀 우습기는 하지만 내용은 따로 있다. 사형을 당해 죽은 장수나 재상의 이름을 쓴 종이쪽을 나무 장대에 걸어놓고, 그것을 두박신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한국의 무속(巫俗)에 최영 장군이나 남이 장군처럼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고 알려진 사람을 신으로 섬기는 경우가 있으니, 두박신도 이와 같은 경우가 아닌가 한다.

아이들 장난 같은 짓거리지만 이게 15세기 조선 백성들에게는 꽤나 먹혔던 모양이다. 두박신의 존재는 이 동네 저 동네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사람들은 나무 장대를 보고 놀라 떨며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사는 빈손으로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당시 화폐 구실을 했던 종이와 포(布)를 다투어 제물로 바쳤다. 그 제물은 당연히 두박신을 창안한 자들의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

전에 없던 귀신의 출현, 아니 신흥종교의 유행은 당연히 사회문제가 된다. 용인(龍仁) 현감은 자기 관할 구역에서 벌어지는, 희한한 종교 행사를 보고 나무 장대를 압수하고 귀신 이름을 쓴 종이쪽을 불살라 버렸다. 천벌을 받아야 마땅했겠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건은 세종에게도 보고되었다. 세종은 ‘지금 세상에 이런 괴이한 일이 있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며 두박신을 만든 자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 왕명을 받든 두 명의 관리는 탐문 끝에 양성(陽城) 땅에 이르러 강유두(姜流豆), 박두언(朴豆彦), 최우(崔雨) 등 사기꾼 세 사람을 잡았다. 이내 처벌이 따랐다. 이들은 형장(刑杖)을 맞고 유배형에 처해졌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신을 만들거나 신을 자처하여 백성의 재물을 편취하는 수법은 이 경우만이 아니었다. 두박신 같은 것은 얼마든지 있었다. 예컨대 1382년 고성(固城)의 백성 이금(伊金)과 사노(私奴) 무적(無敵)은 ‘미륵불’을 자칭하며 백성들의 재물을 편취했다. 1405년 청주의 관비(官婢) 백이(栢伊)는 귀신이 내렸다고 하면서 공중에 있는 귀신과 대화를 나누었다. 아마도 복화술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1449년에는 중국 황제의 신이 내렸다면서 그 신의 능력으로 인간의 운명과 화복을 맞추거나 말할 수 있다고 하는 자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순진한 백성에게 겁을 주고 재물을 터는 것이었다.

이런 자들이 조선시대에만 있었을까? 아니, 지금도 껍데기만 바꾸어 무수히 복제되고 있는 중이다! 재림예수와 보혜사(保惠師, Counselor)를 자칭하는 자는 이미 허다하고, 최근에는 ‘하느님 까불면 죽는다’면서 저가 섬기는 신보다 자신이 우월함을 떠벌리는 자까지 나왔다. 이들은 과거 두박신을 만들고 재물을 편취했던 자들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타인의 영혼과 신체를 지배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돈과 권력을 쥐려는 자들이 도처에 날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행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종교를 빙자한 사술(詐術)의 역사를 떠올린다. 난세에 사술이 어디 이것뿐이랴. 정신을 성성(惺惺)하게 갖고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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