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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양심적인 일본 변호사들의 ‘일제 징용공 사건’ 변론

등록 2020-05-29 06:01수정 2020-05-29 08:32

완전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

가와카미 시로 외 지음, 한승동 옮김/메디치미디어·1만8000원

1943년 일본의 한 제철소는 평양의 한 신문에 채용 광고를 냈다. 오사카 제철소에서 2년간 훈련받으면 한반도의 제철소에서 기술자로 일하게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광고를 본 17살, 20살의 두 청년은 채용에 응모했지만 약속과 다른 일을 했다. 기술을 배우는 대신, 화로에 쌓인 석탄 찌꺼기를 치웠다. 한 달에 쉬는 날은 하루이틀밖에 되지 않았고 용돈으로 2~3엔 정도만 받았다. 기숙사 사감이 월급통장을 보관했지만 돌려받지 못했다. 배가 고팠다. 도망치려다 걸리자 구타를 당했다.

인권이 짓밟힌 이 이야기는 ‘일본제철 징용공 사건’의 일부다. 1990년대부터 피해자들은 피해사실을 인정받고자 한·일 양국을 오가며 싸웠다. 2018년 10월30일이 돼서야 한국 대법원은 이들을 강제동원한 일본제철에 1인당 1억원씩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어 대법원은 2018년 11월29일 미쓰비시 히로시마 징용공, 미쓰비시 나고야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사건 등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이 배상받을 권리를 인정했다.

그러자 일본 아베정부는 ‘한국이 약속을 깼다’며 2019년 7월 한국에 수출규제강화조치를 가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강제징용공과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판단이 근거가 됐다. <완전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는 이 판단에 반박하는 일본 변호사 6인이 쓴 책이다. 지은이들은 ‘청구권 협정은 외교보호권이 소멸됐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이 주장은 한일 청구권 협정을 체결한 당시의 해설서와 일본 관료의 말 등을 종합해 증명된다.

한국과 일본의 징용공 사건 판결은 법조인의 시각으로 건조하게 분석한다. 하지만 1910년 한일 강제병합조약부터 역사적인 회담을 짚어주는 대목에선 역사 사료를 읽는 듯 섬세하고 조심스럽다. 한국과 일본에 각각 정보공개청구를 해 진실을 알려고 한 노력을 볼 땐, 사건을 파헤치는 저널리스트의 모습까지 보인다. 이들이 소개한 징용공의 사연은 마치 한편의 소설 같기도 하다.

1945년 해방이 있기 두 달 전, ‘일본제철 징용공 사건’의 두 청년은 함경북도 청진의 제철소 건설 현장에까지 강제징용됐다. 하루 12시간 토목공사에 동원됐고 임금은 이때도 받지 못했다. 양심적인 변호사들은 일본을 비판하며 말한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문제를 차단한 ‘한일 청구권 협정’은 완전하지 않았고, 이들의 싸움도 끝나지 않았다고.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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