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재판거래’를 가리켜 “사법농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판거래 의혹은 박근혜 정부 때 양승태 사법부가 법관 국외 파견을 늘리려고 정부가 원하는 대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일본 전범기업 상대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 판결을 지연시켰다는 내용으로,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조 후보자는 ‘법원행정처가 삼권분립의 원칙에 반해 행정부와 여러 거래를 했기 때문에 사법농단 사건은 중요한 범죄행위가 아니냐’는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이 문제를 사법농단으로 정의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연루된 사법농단을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김상희 민주당 의원의 거듭된 질문에도 조 후보자는 “사법농단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조 후보자는 외교부 2차관이던 2015년 6월, 재판거래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을 만나 강제동원 재판 재상고심 진행 과정 전반을 의논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또한 검찰은 외교부가 재판 절차 지연 수단으로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방안을 법원행정처가 추진했다고 봤는데, 조 후보자는 이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그간 조 후보자는 ‘재판거래 가담 의혹’을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소통했을 뿐”이라고 해명해왔으나, 이날 답변은 한발 더 나아가 사법농단 자체를 부정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조 후보자는 “강제징용 판결로 인한 중차대한 문제가 어떻게 해외 법관 파견 같은 사소한 문제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겠나”라며 “재판거래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에 전해철 의원은 “이 사건 자체가 대법원·법원행정처가 직권을 남용해서 행정부 등과 협의 또는 논의해 (재판을 지연시킨) 굉장히 중대한 범죄인데, 그것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후보자의 답변 태도는 아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