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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널리 알려져야 할 ‘신경다양성’

등록 2020-12-18 04:59수정 2020-12-18 09:11

[책&생각] 정인경의 과학 읽기

뉴로트라이브
스티브 실버만 지음, 강병철 옮김/알마(2018)

<뉴로트라이브>는 책제목부터 독특하다. 저자 스티브 실버만은 신경을 뜻하는 뉴로(Neuro)와 부족이라는 뜻의 트라이브(Tribes)를 결합해서 새로운 용어를 만들었다. 자폐인을 ‘뇌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굉장히 동질적인 사람들’이란 의미에서 ‘뉴로트라이브’라고 부른 것이다. 자폐증이라는 용어는 정상적인 사람과 맞지 않는 것, 잘못된 것, 틀린 것, 나쁜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정신의학에서 사용하는 낙인찍는 듯한 용어를 버리고 새롭게 정의하였다. 뉴로트라이브에는 신경학적으로 소수지만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존재라는 자부심이 담겨있다.

이 책은 자폐증, 난독증, 주의력결핍과다활동장애(ADHD) 등을 바라보는 사회적 통념을 깨고 과학적 사실을 바로잡았다. 어느 자폐아를 둔 아버지는 저자의 테드(TED) 강연을 보고 이렇게 고백한다.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제 아들을 병든 존재, 손상된 존재, 열등한 존재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강연을 보고서야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군요.” 이 말에서 그동안 자폐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스티브 실버만은 탁월한 공감능력과 감성으로 ‘자폐증의 잊혀진 역사’를 복원하였다. 과학의 역사적 맥락은 우리의 어두운 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만약 인간을 향한 애정이 없었다면 지난 80년 동안 자폐를 탐구하는 과학은 오류와 편견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냉장고처럼 차가운 엄마’를 탓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횡행하고, 백신 접종의 부작용으로 자폐증에 걸렸다는 날조된 논문이 발표되었다. 현대의 유행병으로 몰아가는 혼탁한 상황에서 자폐의 범주에 다양한 지적 능력이 있음이 하나 둘씩 드러났다. 자폐인에게는 특별한 기억력과 계산능력, 언어능력, 예술성, 상상력이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자와 철학자, 유명인들 중에 이런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헨리 캐번디시, 폴 디랙, 니콜라 테슬라, 비트겐슈타인과 공상과학소설 장르를 창조한 휴고 건즈백 등이다. 이렇듯 자폐인은 넓은 스펙트럼으로 존재하며 뛰어난 재능으로 사회에 기여하였다.

누구나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은 있다. 어떤 이는 주변 환경의 작은 변화에 민감하고 비언어적 소통을 알아듣지 못한다.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기도 하고, 고도의 집중과 집착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비정상이며 의미없는 삶을 산다고 단언할 수 없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이들의 뇌에는 독자적인 경험과 감각, 사고, 감정의 세계가 자리잡고 있다. 이 책은 자폐증을 신경다양성의 개념으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컴퓨터의 운영체계가 다르듯이 신경다양성을 인간 운영체계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연구는 자폐증이 “인구 전체에 폭넓게 분포하는 매우 오래된 유전자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자폐 성향은 인류의 유전자에 깊숙이 뿌리박혀있는 정체성의 일부였던 것이다. 기후위기를 알린 그레타 툰베리처럼 이들의 인지적 차이가 지구를 구하고 있다. <뉴로트라이브>는 자폐증을 이해하고 공부하는 것을 뛰어넘어, 우리 사회가 보통의 아이들과 다른 아이들을 어떻게 돌보고 포용할 것인지를 성찰하는 책이다.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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