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주일우의 뒹굴뒹굴 만화 (2) 극락왕생1
어릴 때부터 귀신을 부르는 지방을 모시고 귀신에게 축을 아뢰었지만 귀신을 본 적은 없다. 꿈에서도 본 적이 없다. 제사를 중히 여기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혹시, 오시나 싶어서 긴장을 했건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절을 할 때마다 눈을 감고 오실 때까지 숫자를 길게 세어 보기도 했고, 귀신의 흠향을 기다리는 시간을 부러 길게 잡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내 주변에만 귀신이 없는 것일까?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는 것일까?
시골 사는 친구, 시인 성윤석은 귀신을 본다고 했다. 그는 서울 살 때, 공동묘지를 관리하는 회사를 맡아서 일했는데 그것이 자기가 귀신을 보고 느끼는 것과 운명적으로 엮여 있다고 했다. 그가 처음 귀신을 본 것은 군복무 중이었다. 마을과 군부대에 물을 공급하는 급수장이 공동묘지 앞에 있었고 그곳에 홀로 근무하던 그는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 마네킹을 지고 다니는 노인을 만났는데, 그 노인이 그 마을의 유명한 원귀였다나. 아직도 귀신을 보는가 물었더니, 잠들라 치면 수백의 얼굴이 눈앞에서 돌아가면서 인사를 했었는데 요즘은 선명하지 않고 느낌만 온다고 한다. 귀신을 보는 그가 묘지기 노릇을 하면서 망자와 그곳을 찾는 이들을 위로한 그의 세월이 충분해 귀신 돌보기를 그만두어도 될 만큼 선업을 쌓은 탓이 아닐까?
내 주변 사정은, 귀신들이 귀해지고 있는데 이야기 나라에서는 귀신들이 들끓는다. 서양 귀신, 한국 귀신, 심지어 사람도 귀신도 아닌 좀비까지 소설, 만화, 영화를 가리지 않고 꽉 들어찼다. 사람들 사는 것만 헤아려도 세상 돌아가는 것 가늠해 보려면 어지러운데, 귀신까지 어울려 사는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를 알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귀신들 세계의 질서도 만들고, 사람들과 관계도 다시 그리다 보니, 오래된 이야기들이 소환되어 온다. 얼마 전에 뒹굴대며 읽은 <극락왕생> 1권은 불교에서 오랜 세월 닦아온 구조를 가져다 쓴다. 지옥도를 관장하는 지장보살, 인간도를 다스리는 관음보살, 그리고 아수라도에서 온 문수보살과 아귀도에 있다는 보현보살이 세상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지장보살의 심복, 지옥도의 수호신인 도명이 스물여섯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당산역 귀신이 되었던 박자언과 함께 귀신을 만나는 이야기. 도명은 당산역에서 사람들에게 체리필터의 ‘낭만 고양이’를 부르게 하는 귀신 박자언을 잡으러 갔다가 관음보살의 명으로 고3이 된 박자언과 1년을 함께 살게 된다. 그리고 만나는 귀신들. 작은 귀신, 큰 귀신, 이상한 귀신, 위험한 귀신들. 혹은, 노름 귀신, 살림 귀신, 발도둑 귀신, 항아리 귀신. 다음 권으로 넘어가면 더 많은 귀신들이 등장하겠지.
그런데, 비밀은, 이 귀신들은 무섭거나 사납지 않고, 도명에게 쉽사리 제압될 만큼 힘이 세지 않다. ‘사랑해서 생긴 나의 약점들인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그제서야 떠올랐다가 // (…) // 처음 가는데도 와 본 듯한 골목길 뛰어나오면 다시 그 골목길’(성윤석, ‘사자의 서’). 몸에서 막 벗어난 영혼은 아마도 귀신을 보는 이 친구가 묘사한 상황에 놓였을 것이다. 살면서 쌓은 인연에 목맨 영혼들은, 자식과 아내, 혹은 연인이 눈에 밟혀 인간도를 떠나지 못한 영혼들은 귀신이 된다. 이들이 귀신이 된 것보다 더 슬픈 일은, 못 한 일 하고 가겠다고 원을 세워 귀신이 되었건만, 세월이 흐르면서 원은 잊고 습관만 남는다.
신발을 훔치던 발도둑 귀신을 잡아놓고 이유를 물으니, 그의 대답이 이렇다. “정말로 기억이 안 납니다. 오랫동안 열심히 뭔가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긴 세월 전 무엇을 모으고 있었던 건지….” 세상에 묶어둔 사연을 잊고 수백년간 하릴없이 신발을 모은 발도둑 때문에 눈물이 난다. 이유도 모르고 바쁘게만 살고 있는 이 몸의 처지가 크게 다를 것 없으니. 스물여섯에 세상을 떠난 박자언의 사연에까지 이르면 내 눈물은 더 짜지겠지. 문수보살은 무슨 음모를 안고 있을까? 관음보살이 도명을 인간도에 풀어놓은 뜻은 무엇일까? 당장은 책으로 더 나올 때까지 기다릴지, 아니면 벌써 22화까지 나와 있는 웹툰을 결제할지, 고민이 크다.
만화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