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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마음만 먹으면 뭐든 될 수 있다고?

등록 2021-02-19 04:59수정 2021-02-19 08:49

증거에 기반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책&생각] 정인경의 과학 읽기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빌 설리번 지음, 김성훈 옮김/브론스테인(2020)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지구가 평평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생물학적으로 평등하지 않다. 우리가 진화해서 지구에서 출현한 것은 생물학적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개체들 사이의 변이가 진화의 원동력이었다. 모두가 똑같이 태어나면 자연선택이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아마 공정과 공평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생물학적 불평등일 것이다. 우리는 원하는 대로 다 될 수 없다. 운동선수, 피아니스트, 과학자를 꿈꾼다고 모두가 될 수 없는데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은 이런 어른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고발한다. 사람마다 타고난 유전자가 다르고, 몸 속의 미생물이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다. 우리의 행동과 성격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 과학자들은 한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는 여러 가지 지표들을 찾아냈다. 태내 환경, 후성유전학, 아동기 경험, 진화압, 미생물총, 호르몬 등이 우리가 원치 않는 비만, 우울증, 알코올중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특히 후성유전학은 스트레스, 학대, 가난, 방치와 같은 나쁜 환경이 유전자에 흉터를 남겨서 여러 세대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했다.

“과학은 누구든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될 수 있다는 개념을 떨쳐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과 후천적인 환경에서 큰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해야 한다.” 유전학과 전염병을 연구하는, 이 책의 저자 빌 설리번은 이렇게 생물학적 불평등을 힘주어 강조한다. 공평한 세상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보인다. 바로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사회적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유전자의 횡포에 휘둘리는 사회적 약자에게 개인의 의지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함께 세상의 불행과 불평등을 몰아낼 책임을 지녀야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사례는 감동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뉴욕에 빈민층 임산부를 보살피고 아이의 성장을 추적·관찰한 연구가 있다. 임신 기간 중 10여 차례, 아이를 낳은 후 2년 동안 20여 차례 가정방문과 의료지도를 실시했더니 아동학대와 범죄, 마약중독의 횟수가 극적으로 줄었다. 또한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지원 시스템은 아이슬란드에서도 큰 효과를 보았다. 1990년대 아이슬란드 청소년 중 40%가 음주를 했고, 20%가 마리화나를 피웠다. 최근에 그 비율이 5% 아래로 떨어졌다. 알코올과 흡연에 빠졌던 아이들을 건져낸 것은 국가에서 후원하는 방과후 프로그램이었다. 피아노 연주, 탱고 배우기, 무술 훈련과 같은 ‘자아발견 프로젝트’는 아이들에게 약물보다 더 황홀한 천연 도파민의 경험을 주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생물학을 이해함으로써 얻은 성공이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 원인을 분명히 알고 대처해야 한다. 나를 나답게 만든 것은 유전자와 미생물, 신경전달물질, 환경의 복잡한 상호작용이었다. 과학이 알려주는 ‘나’는 과거에 알던 내가 아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잘못된 생각과 믿음 속에 살고 있다.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증거에 기반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자.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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